[김창준의 한국정치 미국정치] 정체성 지키는 게 한나라당의 살 길
북한이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해 한국 정부를 비난하고 있다. 관영 매체들을 총동원해 남한의 시민단체들과 노동자,농민 등이 나라를 통째로 미국에 팔아 넘기는 FTA 체결을 반대하는 촛불시위를 전개해야 한다고 부추긴다. 광우병 파동 때처럼 대규모 촛불시위를 유도하라는 선동이다.

북한의 속내는 이런 것 같다. 한 · 미 FTA가 실패하면 한 · 미 동맹 관계에 금이 가고 군사동맹까지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한국을 무력으로 위협할 수 있다고 믿는 듯하다. 한 · 미 FTA가 실패하면 북한 못지않게 좋아할 이웃이 또 있다. 중국과 일본이다.

FTA 반대파는 처음에는 자동차를 거론하면서 "우리는 당장 퍼주고 미국은 천천히 내주는 불평등 조약"이라고 공격하다 그 다음엔 "농민들이 다 망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래도 국민들의 찬성여론이 60%를 넘자 서민들이 잘 이해하기 어려운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를 내걸어 공격하기 시작했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들에게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 이완용'이란 막말을 퍼부었다. 광우병 파동 때 어린 아이들을 통해 "나 더 살고 싶어요"라는 자극적인 문구를 내세웠던 수법과 유사하다.

우리 측 전문가들이 과거 45년 동안 ISD 위반으로 제소당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설명해도 들은 척도 안 한다. 한국의 대미 투자액이 534억달러인 데 비해 미국의 한국 투자는 449억달러이기 때문에 ISD는 미국에 투자한 우리 투자자들을 보호하는 장치라고 설명해도 이들은 귀를 닫는다. 문제가 생겼을 때 미국 법정에 서는 것이 아니라 제3의 국제기관인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센터에서 중재하는 것이라고 항변해도 우리의 사법제도와 주권을 침범하는 독소 조항이라며 우긴다.

FTA 비준안이 처리되면 감기약이 열 배로 뛸 것이라는 등 허위 사실까지 유포하고 있다. 광우병 파동 때와 똑같은 수법이다. 검찰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와 인터넷을 통해 허위사실이나 괴담을 유포한 사람들을 구속 수사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한나라당 의원들이 야당과 합세해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반발했다. 실망스럽다.

지난 서울시장 선거 때 한나라당을 지지하던 보수세력들이 등을 돌린 것은 한나라당의 정치 철학이 뭔지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미국 보수당인 공화당은 250년간 성공적으로 보수의 자리를 지켜왔다. 한나라당도 공화당처럼 법과 질서를 지키는 강력한 보수의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만 다음 선거 때 흩어진 보수세력을 다시 결집할 수 있다.

한나라당이 밀어붙여서라도 FTA 비준안을 통과시켜 집권 여당으로서의 리더십을 보여줘야 할 때다. 보수정당으로서 제자리를 찾는 일이 중요하다. 이것이 한나라당이 살 길이다.

김창준 < 전 미국 연방하원의원·한국경제신문 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