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오후 서울 서소문동 시청 별관(다산플라자) 출입구에선 몸싸움과 고성이 오갔다.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에 반대하는 서부이촌동 주민 30여명이 건물에 들어서려고 하자 경찰과 방호원들이 막아선 것이다. 서울시 주택담당 부서 관계자는 주민에게 둘러싸여 멱살을 잡히는 등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주민들은 박원순 시장 면담을 약속받은 후 해산했고,결국 다음 날 박 시장 면담은 성사됐다.

지난달 27일 박 시장이 취임한 후 시장집무실이 있는 시청 별관 앞 덕수궁 돌담길은 '민원 해방구'로 변했다. 시장 면담을 요구하는 시위대가 주말을 제외하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곳을 점령하기 때문이다. 시민들과의 '소통'을 강조하는 박 시장은 민원인과 직접 면담에도 선뜻 응하고 있다. 서부이촌동 주민을 비롯해 앞서 시위를 벌였던 은평뉴타운,서대문가좌지구,송파 거여 · 마천지구 주민들도 모두 시장면담을 이뤄냈다.

민원인을 계속 만나겠다는 박 시장의 의지는 확고하다. 그는 지난 10일 예산안 브리핑에서 "떼쓰는 민원이 많아지고 있다"는 기자들의 질문에 강한 어조로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라고 답할 정도다. 박 시장은 "이렇게 민원이 많이 생기는 건 소통이 없었던 전임 시장이 낳은 결과물"이라고 비판했다. 다만 그는 "민원인의 폭력과 무질서는 용납하지 않겠다"며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서 무조건 만나달라는 건 제가 들어야 할 의무가 없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공무원들은 당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하다. 시장이 앞장서 민원인을 만나다 보니 담당 공무원들도 시청으로 몰려온 민원인을 어쩔 수 없이 만날 수밖에 없다. 공무원들은 "민원인은 법규보다 목소리가 큰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정상적인 법집행 때도 '떼민원' 가능성을 따지게 돼 적극적인 일처리가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공무원들 죽여 버려" "국 · 과장 다 잘라 버려." 이런 험한 욕설을 듣는 건 기본이다. 주택담당 부서의 한 공무원은 "나이도 한참 어린 민원인들이 욕하고 삿대질할 때마다 '이 일을 계속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공무원은 "정당한 민원 절차를 밟지 않고 무작정 집단으로 몰려와 시장을 만나겠다는 것도 폭력과 무질서인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박 시장의 민원인 면담은 온라인상에서도 수시로 이뤄진다. 박 시장은 자신의 트위터에 민원을 남기는 네티즌의 글에 일일이 답변해 주면서 "해당 건에 대해 담당 부처가 검토해 보세요"라는 댓글을 달기도 한다. 시 공무원들은 하루에도 수십번 박 시장의 트위터를 확인하는 것이 '업무'로 정착됐다.

이러다 보니 일선 공무원들이 시장과 민원인의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박 시장의 한마디에 따라 기존 정책이 단번에 뒤집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