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편성채널에 출자한 기업들의 명단이 밝혀지면서 '정부는 대체 어떻게 했기에'라는 개탄의 목소리가 절로 터져나오고 있다. 종편 사업자들이 당초 방통위에 제출한 자본금 확보와 출자자 모집이 여의치 않자 기업들의 팔을 비틀어 억지 출자를 받아냈다는 풍문이 하나둘 사실로 밝혀지고 있다. 일부 적자 기업과 퇴출 대상 금융회사에까지 출자를 강요한 것이어서 언론사로서는 차마 시도할 수 없는 파렴치한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종편 선정 과정이 부실했다는 비난 여론을 모면키 위해 방통위조차 출자자 확인을 소홀히 하거나 개입했다는 비난과 의혹을 받을 수도 있는 일이다.

한진중공업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근로자 172명에게 정리해고를 통보한 직후인 지난 2월 모 종편에 30억원을 출자했다. 지난해 517억원의 적자를 내고 2년 동안 한 척의 선박도 수주하지 못한 부실 기업이 수익성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사업에 투자했다는 사실을 정상적으로 보는 사람은 없다. 한진중공업이 어떤 회사인가. 지난 한햇동안 노사 갈등과 시민단체의 개입, 오너의 비도덕성으로 언론 보도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기업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종편 사업자인 이 신문은 출자를 받아낸 뒤 한진중 사태에 대한 비판적인 보도를 거의 내보내지 않았다.

물론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자체를 비난하거나 비판할 이유는 전혀 없다. 기업 경영에는 경영적 판단이라는 대원칙이 있는 것이고 심지어 기업가는 폐업할 권리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이런 민감한 문제에 제3자가 나서서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진중공업은 다른 경우다. 경영 사정이 심각해 도저히 정리해고를 단행하지 않고는 안 될 정도인 상황에서 사업전망이 지극히 불투명한 특정 종편에 30억원이란 적지않은 자본금을 투자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나 지극히 비정상적이다. 한진중공업으로선 벼랑끝에 몰린 상태에서 종편 출자 요구를 받고 보험을 든다는 심정으로 울며겨자먹기로 출자했으리라는 것이 상식적인 판단일 것이다. 놀랍게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부실 저축은행들의 출자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제일저축은행 토마토저축은행 등은 영업부진을 겪은 끝에 지난 9월 결국 영업정지되고 말았다. 이들 저축은행이 출자한 시점도 저축은행 사태에 본격적으로 불이 붙던 시점이다. 종편사들이 영업정지를 눈앞에 둔 부실 금융회사까지 적게는 10억원에서 많게는 30억원까지 출자받아 갔다는 것이어서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이외에도 허다한 저축은행들이 줄을 지어 종편에 자본금을 댔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보험료의 성격을 갖는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민영화된 공기업과 주인 없는 은행권의 출자는 또 다른 문제다. KT는 종편에 모두 83억9000만원을 투자했다. KT의 종편 출자는 결국 방통위가 특정 종편 지원에 발 벗고 나섰다는 의혹을 던지기에 충분하다. KT가 투자한 시점도 자본금 납입 기한을 넘긴 다음이었다. KT는 100% 자회사인 KT캐피탈이 자금을 투입했고 그것도 투자 사실이 드러나지 않도록 지분율을 최소 지분(1%) 이하로 결정했다.

은행권 출자에는 금융지주사들이 출동했다. 하나같이 이명박 대통령과 개인적 친분을 유지하는 인사들이 회장을 맡고 있는 금융지주사들이다. 이것도 납입 기한을 넘긴 출자였다. 자본금을 채우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종편사에 단비가 내린 셈이었다. 이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최시중 방통위원장의 직접적인 해명이나 설명도 필요하다. 그동안 이들 금융지주사는 종편은 투자할 가치가 전혀 없다며 거들떠보지도 않았었다. 절대불가를 외치던 금융사들이 왜 납입 기한이 지난 4월 이후 돌연 출자금을 내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무언가 납득할 만한 설명이 필요하다. 더구나 무려 4개사나 종편사업자로 선정된 다음이다.

만일 금융사들의 종편 출자와 관련해 방통위 혹은 방통위 간부들이 개입했었다면 이는 중대한 문제다. 어떻든 기업의 목을 비틀어 출자금을 받아낸 이들 종편이 과연 국민과 나라에 유익한 방송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우격다짐으로 자본금 납입을 마친 종편사들은 벌써부터 기업들에 광고와 협찬 제공을 강요하면서 시장을 흙탕물로 만들고 있다. 이런 거대한 사회적 낭비와 비리구조를 누가 만들어놓은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