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검사 앞좌석에 수석검사…식사 때도 '서열'
판사들은 어딜 가나 표가 난다. 걸어갈 때부터 '삼각편대'다. 최고참 선배가 가운데서 약간 앞서 가고 후배들은 약간 뒤처진 좌우에서 따라간다. 부장판사 좌우에 배석판사가 앉는 법정의 약간 변형된 모습이다. 법복을 벗고 법무법인(로펌)에 들어가서도 '삼각편대'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사법연수원 동기 간에도 서열이 있다. 사법시험 성적과 사법연수원 성적으로 매겨지는 임관서열인데,산을 오를 때도 이 순서가 잘 지켜진다고 한다. 하지만 부장판사가 10년 이상 나이 차이가 나는 새까만 배석판사한테 깍듯이 존대말을 쓰기도 해 각자가 독립된 헌법기관이라는 법관의 세계는 애매한 구석도 없진 않다.

상하 복종관계가 칼 같은 검찰에서야 선후배 관계가 확실하다. 수석검사의 자리는 길을 걸을 때 부장검사의 오른쪽,식사할 때는 부장검사의 앞 좌석이라는 식이다. 분위기 파악 못하고 아무 자리나 덥석 앉았다간 눈칫밥 먹기 십상이다.

◆'빽'만 믿다간 쫓겨나기 십상

로펌에서 파트너 변호사와 어소시에이트(어소) 변호사의 관계는 냉정하다. 한 파트너 변호사는 "소위 '빽'이 있으면 빅 로펌에 입사가 가능하겠지만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어소 변호사는 보통 여러 파트너 변호사의 '공동조'처럼 이리저리 불려다니며 일한다. 때문에 실력있는 어소는 밤늦게까지 일에 치이지만 실력없는 어소는 파트너들에게 외면당해 칼퇴근을 하게 된다. 그는 "파트너들 사이에서 '저 어소는 야무지게 일 잘하고,저 어소는 일처리가 ?C판이다'는 소문이 정말 빠르다"며 "같은 시기에 비슷한 스펙으로 들어온 어소라 해도 일한 시간을 보면 천차만별"이라고 말했다.

◆윗사람 너무 잘 모셔도 문제

서울중앙지검 A부장검사는 후배들이 너무 잘하려고 해서 불만이다. 어떻게 알았는지 생일이 되면 케이크를 꼭 준비해 놓는다. 인사성도 바르고 술자리에서도 흠잡히지 않으려고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는 일이 절대 없다. 사법시험 합격자가 1000명이나 되고,검사 임관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사법연수원 교수들을 잘 모시려던 데서 유래됐을 거라는 게 A부장의 분석.그는 "사건을 잘 처리하는 후배를 좋아한다. 사람을 잘 모시는 후배는 오버하는 것 같아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술고래 부장과 낮술 뒤 법정에서…

B판사는 술을 좋아하는 부장판사를 모시면서 괴로운 경험을 했다. 그의 부장판사는 점심에도 반주,저녁에도 반주를 하는 스타일이었는데,문제의 그날도 배석들과 점심을 함께하며 술을 꽤 마셨다. B판사는 다행히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지는 않았지만 얼큰하게 취했다. 공교롭게도 그날 오후 2시 재판이 복잡하고 지루한 경제사건이었다. 변호사들의 프레젠테이션이 진행되고 알 수 없는 용어들이 난무하자 B판사는 자기도 모르게 깜빡 배석판사 자리에서 잠이 들었다. 재판 후 부장판사의 폭풍 같은 잔소리를 들었음은 물론이다. B판사는 그 후로 재판 전에 찬바람을 쐬는 등의 노하우를 개발 중이라고 했다.

◆선배마다 기준 제각각…'애정남'필요

후배들은 선배들의 다른 기준에 헷갈려 하기도 한다. 대형 로펌에 근무하는 C변호사는 4년 전 사법연수원생 시절 모 지방검찰청 산하 지청에서 두 달가량 검찰시보를 했다. 그가 맡은 사건 중에는 술취한 손님이 끓는 찌개그릇을 식당 종업원에게 던져 종업원 팔을 살짝 데게 한 건이 있었다.

이 변호사는 피해자의 화상 정도가 미미한 점을 감안해 벌금 50만원을 구형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이를 본 담당 부장검사는 "이게 얼마나 위험한 범죄인데 '솜방망이' 구형을 하느냐"고 꾸짖었다. 그는 부장검사의 지시에 따라 수백만원의 벌금형으로 의견을 바꿨다. 그러자 이번에는 지청장이 불러서 "서민들에게 100만원이 얼마나 큰 액수인지 모르느냐"며 혼냈다. 결국 피의자에게는 벌금 30만원이 구형됐다.

◆배석판사 모시는 부장판사의 고충

D부장판사는 "배석판사를 모시고 산다고 하소연하는 동료들이 가끔 있다"고 전했다. 법조계에서 부자 또는 부녀 법조인,장인 · 사위 법조인,부부 법조인 등 가족 법조인은 다른 업계에 비해 흔한 편.

우수한 성적으로 판사에 임용된 법조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배석을 데리고 있는 부장판사가 예전에 모셨던 선배 법조인의 아들딸 또는 사위 며느리인 경우가 부지기수라는 것.야단을 치려고 해도 배석의 얼굴에서 과거 모셨던 법원장이나 학교 선배 얼굴이 어른거리는 순간 치솟았던 짜증을 다스리게 된다는 것.파트너와 어소시에이트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변호사 1명,로스쿨생 2명 '동거'

법무법인 바른은 최근 서울 삼성동 건물에서 변호사 사무실이 있는 14개층 가운데 11개층의 사무실 3개씩의 벽을 허물어 하나의 사무실로 만들었다. 로스쿨 출신이 내년에 입사하면 이 사무실마다 2명씩 고참 변호사와 함께 총 3명을 함께 배정할 계획이다. 강훈 바른 대표는 "서초동에 (1989년) 법원이 생기기 전 서소문동 시절에는 합의부 부장판사 1명과 배석판사 2명이 함께 사무실을 썼는데 그때처럼 회귀한 것"이라며 "선배 변호사들이 로스쿨 졸업생들 옆에 붙어서 가르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병일/임도원/이고운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