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일의 법조 산책] 대법관과 변호사 개업
작별 인사를 할 겸 지난 15일 대법원 청사 9층의 박시환 대법관 방을 찾았다. 지난 6년을 되돌아보며 느긋하게 감상에 잠겨 있을 모습을 그렸지만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사건 서류더미 앞에 앉은 박 대법관은 골무 낀 손으로 밀린 '숙제'를 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퇴임을 불과 닷새 앞둔 날의 풍경이다.

대법관은 취임 첫날 하루만 행복하다는 말이 실감났다. 같은 날 퇴임하는 김지형 대법관 방은 그나마 좀 정돈돼 있었다. "1주일 전만 해도 시원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27년간 정든 법원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섭섭하다는 느낌이 자꾸 든다"는게 그의 소감.그런데 두 사람 다 퇴임 후 변호사 개업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는 상고심 사건 하나만 맡아도 서초동의 1년 사무실 임대료가 나올 정도로 수입이 짭짤하다. 하지만 박 대법관은 "대법관 경력은 개인 자산이 아니다"며 손사래를 쳤다. 둘 다 로스쿨행을 염두에 두고 있다. 최근 퇴임한 이용훈 전 대법원장,이홍훈 전 대법관도 전관예우에 대한 비난 여론을 의식한 듯 하나같이 변호사 개업은 단념했다.

반면 고위직 검사 출신들은 변호사 개업에 거부감이 없는 것 같다. 서울고검장 출신으로 대법관에 임명돼 벌써 내년 8월 퇴임을 앞두고 있는 안대희 대법관은 변호사로 개업할 뜻을 여러차례 밝혔다. 전임 검찰총장들은 거의 예외없이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그럼에도 변호사 사무실에 문패를 달지 않거나 특정 사건의 변호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는 꺼리는 등 은둔의 변호사로 남기를 원하는 눈치다.

대학강단에 서는 등 고고한 인생으로 남을 거냐,아니면 화려한 전관 변호사로 전업하느냐는 전적으로 본인이 선택할 문제다. 누가 이래라 저래라 강요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래도 법조인 개인의 '향기'는 달라진다.

김병일 법조팀장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