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의 '경영 업그레이드'] '300년 기업'의 비전
"20대에는 이름을 떨치고 30대엔 운영자금을 축적한다. 40대에 승부를 걸고 50대엔 사업을 완성시킨다. 60대에는 다음 세대에 사업을 물려준다. "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열아홉 살에 세웠다는 '인생 50년 계획'의 골자다. 손 회장은 최근 사망한 스티브 잡스의 뒤를 이어 세계적인 혁신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아이폰 같은 구체적인 상품을 설명하며 소비자들에게 직접 화두를 던진 잡스와는 달리 경영모델 그 자체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험해 온 사업가다. 그런 점에서 저성장 시대를 뚫고 오래도록 성장할 수 있는 조직 모델을 모색하고 있는 한국의 경영자들에게 날카로운 지적 자극을 주는 기업가로 앞으로 더욱 주목받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이 그의 조직구조론이다. 그는 "300년 동안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계속 숨쉬고 끝없이 진화하는 기업 구조를 발명했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손정의 미래를 말하다')고 말해온 사람이다.

그가 2009년 '신30년 비전'을 내놓으며 강조한 모델이 바로 '전략적 시너지 그룹'이다. 여러가지 좋은 말을 섞어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를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소프트뱅크의 전략적 시너지그룹은 중국의 알리바바와 OPI그룹을 합쳐 800개사가 넘는다. 손 회장은 30년 내에 이 규모를 5000개사 수준으로 늘려갈 계획이다. 계열사나 관계사가 수십 개만 돼도 대기업그룹 집단으로 묶어 '관리'에 들어가는 우리 재계 현실에서 생각해보기 어려운 모델이다.

그가 전략적 시너지그룹을 강조하는 이유는 단일 브랜드,개별 기업으로는 수명이 짧다고 보기 때문이다. 누군가 주도적으로 지배하려다 보면 피라미드 구조가 되고 결국 중앙집권적인 과거 기업 형태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당연히 의사소통에 병목현상이 생길 수밖에 없고 결국 행동이 굼떠 기회를 놓치는 대기업병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그가 피라미드형 대신 웹(web:그물)형 조직을 선호하는 이유도 똑같다. 분권이 실현돼야 의사결정이 초고속으로 추진될 수 있고 기회를 잡아 성장할 수 있다는 얘기다. 손 회장이 51% 이상의 지분을 갖는 계열사형 그룹이 아니라 파트너 전략을 선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유나 지배에는 관심이 없어 출자비율도 20~40% 정도로 조절하고 있다.

생각해보라.자율적이고 권력분산적이어서 스스로 진화가 가능하고 자가증식도 이뤄지는 '소프트뱅크 전략 시너지 그룹'이 수천개의 파트너사로 이뤄진 어느 날을.그 모습을 떠올려 보면 그가 300년이 가는 기업을 만들어내겠다는 비전이 결코 빈말이 아님을 실감할 수 있다.

이미 세계는 경쟁을 이겨내고 혁신역량을 극대화한 기업 부문이 주도하고 있다. 이미 패러다임 전환도 몇 차례나 겪었다. 손 회장의 300년 기업론의 경우는 기업뿐만 아니라 모든 부분에서 음미하고 논의해 볼 만한 화두 아닌가.

반기업 정서가 극에 달해 만악의 근원으로 기업을 보는 시각이 만연해지다 못해 상식이 되고 있는 시절,손 회장의 300년 기업을 화두로 토론할 비즈니스맨들이 얼마나 될까. 열아홉 살에 사업구상으로 밤을 하얗게 세울 젊은이들은 또 얼마나 될까.

권영설 한경아카데미원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