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이후에도 가계부채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면서 사상 최대치 기록을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점점 그 질도 나빠지고 있다. 가계부채에서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가계대출의 경우 담보대출보다 신용대출이,주택구입 목적보다 생활형자금 성격이 증가세를 주도하는 실정이다. 더구나 최근에는 경제성장률 둔화,금리 상승,주택시장 불안 등 여건마저 나빠져 국내 가계부채 문제는 경제의 최대 리스크 요인으로 부각되고 있다.

가계부채는 경제 여건이 나빠져 가계의 재무악화 현상이 심화될 경우 가계 위기로 나타날 수 있다. 가계 체감경기 악화 및 수도권 주택시장 침체 장기화 등에 따른 가계 순자산가치 하락과 금융권의 상환 압력 등으로 가계의 부채상환 부담은 크게 늘고 있다. 가계 순자산가치가 빠르게 축소되고,특히 부채비율이 높은 가계의 경우 순자산이 마이너스가 되면 개인파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부(負)의 자산효과가 나타나면서 소비가 더욱 위축되고,이는 다시 기업들의 수익성을 떨어뜨릴 것이다.

더욱이 최근 저소득 · 저신용자의 2금융권 대출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은행권에서 소외된 고객들이 상대적으로 규제가 약한 저축은행,신용협동조합,상호금융,새마을금고 등으로 몰리는 것이다. 비은행금융권의 가계대출은 신용이 낮은 가구에 집중된다는 측면에서 최근 이들 회사로의 가계대출 쏠림은 위험성을 안고 있다.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가 부과돼 서민층의 이자 부담을 가중시킨다.

위험관리시스템이 미비한 2금융권의 건전성 악화는 다시 가계대출 비중이 가장 높은 은행권으로까지 확산돼 그동안 경쟁적으로 대출한 금융사들이 동시에 어려움에 빠지면서 신용공급을 더욱 위축시킬 가능성이 크다.

우리 경제가 가계부채에 대한 감내 능력을 잃을 경우 1990년대 초 북유럽 3국과 같이 차입비중이 높은 가계와 2금융권이 촉발하는 위기가 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2009년 개인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55.5%로 주요국 중 최고 수준에 근접하고 있으며,2011년의 경우 이보다 훨씬 증가할 것으로 예견된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영국(183.6%)과 미국(137.8%)의 중간 수준이며,가계부채 부실로 금융위기를 경험한 북유럽 국가 중 스웨덴의 경우 위기 직전 비율이 지금의 한국보다 낮은 수준이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미 커져버렸고,점점 커지고 있는 가계부채가 갑자기 터져 가계부채발(發) 위기 상황이 도래하지 않도록 철저한 사전 관리가 절실하다. 정책당국은 인위적 가계대출 억제에 따른 건전 금융소비자의 '2금융권 몰이'를 자제하고,가급적 이들을 은행이 흡수하게끔 유도해 금융의 선순환 구조를 유지해야 한다. 동시에 2금융권 경영상황 악화에 대비해 이들 회사에 무리한 규모의 수신 집중을 방지하는 한편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해 강화된 소비자보호규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가계부채 대책을 금리인상,총량규제 등 정책당국 및 금융회사 입장에서 거시 · 규제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가계 입장에서 높아진 부채를 지탱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가계의 안정적 소득 확보 차원에서 고용의 증가가 중요하다. 또한 가계부채 비중이 높은 중산층의 실물자산 유동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한편 금융회사도 무리하게 가계부채를 회수할 경우 '죄수의 딜레마'게임에 의해 결국 금융회사 전체 부실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금융권 전체 차원에서의 대책 수립이 필요하다. 가계 역시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건전 소비생활을 지향하며 스스로 금융에 대한 이해력을 제고해야 할 때다.

박덕배 < 현대경제연구원 전문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