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행흔적 마지막 0.1% 찾아내는 미래 CSI
서울 한남동에 있는 가수 송대관 씨(65)의 집 마당에 소주병이 날아들었다. 지난 9월29일 일어난 이 사건을 해결한 건 다름아닌 '지문'이었다. 서울 용산경찰서 과학수사팀은 마당에 흩어진 병 조각을 모아 범인 S씨의 지문을 채취하는 데 성공했다. 그동안 더운 연기를 쬐거나 분석시약인 닌히드린(ninhydrin)을 뿌린 뒤 다림질을 해 지문을 채취해 왔지만 종종 뭉그러져 '떡진 지문'이 되는 단점이 있었다. 그래서 이를 보완한 첨단 지문감식기를 썼다.

첨단 감식기를 개발한 곳은 경찰대 학술모임인 '범죄수사연구회(범수연)'다. 이 연구회는 지난달 '진공 · CA지문채취장비'를 완성했다. 접착제를 활용해 지문을 뜨는 CA(cyanoacrylate) 기법에 진공상태를 접목한 것이다. 미국에서는 1990년대 도입한 기술이지만 국내 기술로 자체 개발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범수연 지도교수인 유제설 경찰학과 교수(36 · 경찰대 14기) 주도로 학생과 일선 경찰들이 머리를 맞대 만들었다.

경기 용인시 경찰대 512호 실습실에서 16일 만난 유 교수와 범수연 학생들은 실험에 한창이었다. 아크릴로 만든 원통형 기구에 순간접착제인 시아노아크릴레이트를 깔고 활명수병을 집어넣었다. 1시간 정도 지났을까. 극도의 진공 상태에서 활명수병에 접착제가 달라붙으면서 지문 자국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연기 때문에 지문이 잘 보이지 않는 종전 지문 채취기법의 단점을 말끔히 해결했다.

유 교수는 체계적으로 과학수사를 공부하려고 경북대 수사과학대학원에 진학했다. 이후 서울 수서경찰서 지능수사팀장 시절인 2005년 서민들의 쌈짓돈을 털어 달아난 사기단 사건을 해결하면서 과학수사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다. "용의자들이 있는 사무실에 가 보니 이미 도망친 뒤였어요. 감식가방을 들고 무작정 뒤졌죠.'급하게 사무실을 차릴 때 어디를 만졌을까' 궁리했어요. 5시간 만에 원탁 유리 밑에 있던 범인들의 지문을 찾아냈습니다. "

유 교수는 2009년 모교로 돌아왔다. 현장에서 익힌 과학수사 기법을 후배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다. 범수연 회원은 현재 40명.범죄 분석의 권위자인 표창원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45 · 경찰대 5기)가 2002년 이 모임을 만들었다. 회원들은 기계 개발뿐 아니라 동급생들을 상대로 과학수사 강의를 할 정도로 수준급 전문지식을 갖췄다.

졸업반인 김한별 씨(22 · 경찰대 28기)는 "수사를 잘해서 범인을 잡는 게 아니라 현장에 남은 범행 흔적의 마지막 0.1%까지 놓치지 않아야 잡을 수 있다"며 "범수연에서 그 실수를 찾아내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고 소개했다. 김씨는 순천향대 법과학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이다. 동급생인 서재원 씨(22)도 경기대나 순천향대 대학원 진학을 고려하고 있다. 서씨는 "범죄수사 드라마를 보면서 환상을 갖게 마련이지만 국내 과학수사는 아직 발달하지 않았고 미개척 분야인 만큼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김선주 기자 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