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틀이 객석을 향하자 대극장은 산사의 연못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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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속보]사이먼 래틀이 지휘봉을 놓고 객석을 향해 몸을 돌렸다.그의 시선이 2층 객석을 향한 채 서서히 손을 흔들며 지휘를 시작하자 등 뒤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2층 관객 사이에 숨어있던 두 대의 호른과 두 대의 트럼본은 산사의 연못 한 귀퉁에서 피어나는 연꽃처럼 천천히,그러나 아름답게 무대 위의 연주자들과 합일을 이뤄갔다.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호소가와 토시오의 호른협주곡 ‘꽃피는 순간’이 연주되는 20분동안 하늘을 향해 넓게 펼쳐진 연못이 됐다.풍경소리로 잔잔하게 시작한 이 곡은 호른 주자 스테판 도르를 만나 진흙 속에서 간절히 피어나고 싶은 연꽃봉오리로 변하더니 순식간에 관객들을 고즈넉한 산사의 풍경 속으로 몰아넣었다.
올해 클래식 팬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던 베를린필하모닉이 이틀간의 연주 여행을 마쳤다.첫날 말러 교향곡 9번을,둘째날 모리스 라벨 ‘어릿광대의 아침노래’와 호소가와 토시오 호른협주곡 ‘꽃피는 순간’,브루크너 교향곡 9번을 연주한 이들은 지난 세 차례의 내한공연을 통틀어 가장 다양한 매력을 발산했다.특히 일본 작곡가 호시가와 토시오가 베를린 필하모닉과 암스테르담 콘체르트허바우,런던 바비칸 센터에서 공동으로 의뢰받아 스테판 도르에게 헌정,지난 2월 초연한 ‘꽃피는 순간’은 동양적 정서를 완벽하게 표현해내면서 129년 전통을 가진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가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 지를 그대로 증명해냈다.
래틀 스스로 “난 말러 DNA를 갖고 있다”고 말한 것처럼 첫날 말러 교향곡 9번은 고별과 죽음의 정서를 노련하게 담아냈다.소나타 형식의 1악장은 불규칙한 심장박동을 연상시키는 심장병 모티브가 호른,트롬본에 실리며 죽음의 이미지를 강렬하게 드러냈다.관악과 현악이 저마다 번갈아가며 허공을 가를 때 소멸해가는 운명의 이미지가 눈앞에 펼쳐졌다.공격적인 3악장을 지나 클라이맥스인 4악장에 다달했을 때 객석은 숙연해졌다.첼로 독주로 시작된 코다가 사라져가는 시간을 속삭일 때 청중들은 모든 것이 없어질 때까지 귀를 기울였다.
둘째날 2막에서 연주된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은 2악장 ‘죽음의 무도’에서 베를린필의 탄력 넘치는 연주가 빛을 발했다.바이올린의 높은 피치카토와 육중한 리듬은 현악 파트의 열정적인 보잉을 돋보이게 했다.베를린필은 마치 하나의 유기체처럼 살아 움직이며 브루크너의 고별사를 전했다.
이틀동안 청중의 수준도 높았다.클라우디오 아바도가 “말러 교향곡 9번이 끝나고 얼마나 오랫동안 침묵을 유지하느냐가 청중의 수준을 결정한다”고 말한 것처럼 객석은 지휘자가 허공에 멈춘 손을 다 내릴 때까지 침묵하며 기다렸다.역시 관객의 침묵으로 공연이 완성되는 브루크너 교향곡 9번도 마찬가지였다.
베를린필은 이번 내한에서 현대음악과 고전을 넘나드는 최고의 레퍼토리를 선보였다.세계 투어를 할 때 익숙하고 편한 고전 클래식만 연주하는 다른 대형 오케스트라들과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3년마다 한국을 꼭 찾겠다고 약속한 사이먼 래틀과 베를린필,그들의 다음 내한이 벌써 기다려지는 이유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올해 클래식 팬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던 베를린필하모닉이 이틀간의 연주 여행을 마쳤다.첫날 말러 교향곡 9번을,둘째날 모리스 라벨 ‘어릿광대의 아침노래’와 호소가와 토시오 호른협주곡 ‘꽃피는 순간’,브루크너 교향곡 9번을 연주한 이들은 지난 세 차례의 내한공연을 통틀어 가장 다양한 매력을 발산했다.특히 일본 작곡가 호시가와 토시오가 베를린 필하모닉과 암스테르담 콘체르트허바우,런던 바비칸 센터에서 공동으로 의뢰받아 스테판 도르에게 헌정,지난 2월 초연한 ‘꽃피는 순간’은 동양적 정서를 완벽하게 표현해내면서 129년 전통을 가진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가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 지를 그대로 증명해냈다.
래틀 스스로 “난 말러 DNA를 갖고 있다”고 말한 것처럼 첫날 말러 교향곡 9번은 고별과 죽음의 정서를 노련하게 담아냈다.소나타 형식의 1악장은 불규칙한 심장박동을 연상시키는 심장병 모티브가 호른,트롬본에 실리며 죽음의 이미지를 강렬하게 드러냈다.관악과 현악이 저마다 번갈아가며 허공을 가를 때 소멸해가는 운명의 이미지가 눈앞에 펼쳐졌다.공격적인 3악장을 지나 클라이맥스인 4악장에 다달했을 때 객석은 숙연해졌다.첼로 독주로 시작된 코다가 사라져가는 시간을 속삭일 때 청중들은 모든 것이 없어질 때까지 귀를 기울였다.
둘째날 2막에서 연주된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은 2악장 ‘죽음의 무도’에서 베를린필의 탄력 넘치는 연주가 빛을 발했다.바이올린의 높은 피치카토와 육중한 리듬은 현악 파트의 열정적인 보잉을 돋보이게 했다.베를린필은 마치 하나의 유기체처럼 살아 움직이며 브루크너의 고별사를 전했다.
이틀동안 청중의 수준도 높았다.클라우디오 아바도가 “말러 교향곡 9번이 끝나고 얼마나 오랫동안 침묵을 유지하느냐가 청중의 수준을 결정한다”고 말한 것처럼 객석은 지휘자가 허공에 멈춘 손을 다 내릴 때까지 침묵하며 기다렸다.역시 관객의 침묵으로 공연이 완성되는 브루크너 교향곡 9번도 마찬가지였다.
베를린필은 이번 내한에서 현대음악과 고전을 넘나드는 최고의 레퍼토리를 선보였다.세계 투어를 할 때 익숙하고 편한 고전 클래식만 연주하는 다른 대형 오케스트라들과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3년마다 한국을 꼭 찾겠다고 약속한 사이먼 래틀과 베를린필,그들의 다음 내한이 벌써 기다려지는 이유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