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근로시간 단축 압박에…車업계 "현실 모르는 소리"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이 17일 한국GM 부평공장을 방문했다. 장시간 근로 형태에 대한 실태조사를 하기 위해서다. 주야2교대제인 완성차업체 근로 형태를 주간2교대제로 전환하라는 '무력시위'인 셈이다. 이 장관은 "장시간 근로,사내 하도급,부진한 일자리 창출,협력업체의 고용여건 악화 등 우리 노동시장이 직면한 복잡한 문제들은 연결고리만 잘 찾으면 해법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완성차업계는 "생산성 향상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근로 형태 전환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특히 근로시간을 줄인다고 일자리가 늘어나는 게 아니라는 입장이어서 논란이 지속될 전망이다.

◆고용부 "일자리 창출 동참을"

고용부는 실태조사 결과 현대 기아 한국GM 삼성 쌍용 등 국내 완성차업체 근로자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은 55시간으로 국내 평균 41.7시간보다 13시간가량 길다고 밝혔다. 또 잔업과 1~2주 1회의 휴일특근 등으로 연장근로 한도(주 12시간)를 넘어섰다며 또다시 법 위반 사실이 적발되면 사법처리하겠다는 방침이다.

박종길 고용부 근로개선정책관은 "완성차업계의 연간 2400시간 근로는 1500~1600시간대인 외국과 비교할 때 전근대적인 행태"라고 지적했다.

고용부는 특히 사법처리를 지렛대 삼아 현재 주야2교대인 근무 형태를 주간2교대로 바꾸도록 강권하고 있다. 완성차업계의 '맏형'인 현대차의 경우 주야2교대는 A조가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B조는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 각각 10시간(중간 휴게시간 1시간 포함) 근무하는 맞교대 형태로 운영된다. 근무 형태 자체로는 법 위반이 아니지만 정부는 주간2교대제로 전환하면 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며 완성차업계를 압박하고 있다. 이 장관은 "호황을 보이고 있는 완성차업체가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창출해야 한다"며 "야간 근로자를 특수건강진단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주간2교대제로 전환하면 '일자리 함께하기' 지원제도를 통해 1년 동안 추가 근로자 1인당 최대 720만원까지 지급한다는 계획이다.

◆차업계 "노조도 관련된 문제"

완성차업계는 근로한도 초과는 줄이겠다는 입장이지만 주간2교대제로 전환은 생산성 향상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맞서고 있다. 현대차는 2004년 주간2교대로 전환하자는 노사 합의를 이뤘지만 실제 이행되지는 않았다.

이번에 새로 선출된 문용문 현대차 노조위원장이 "야간근로로 인한 건강권 침해를 막기 위해 주간연속 2교대제를 추진하겠다"고 말해 조만간 협의가 진행될 전망이다. 전영철 한국GM 부사장도 이날 "주간연속 2교대제 도입과 관련한 논의를 노조와 성실히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주간2교대로 전환하면 A조가 오전 6시30분부터 오후 3시10분까지,B조가 오후 3시10분부터 11시50분까지 등으로 근로시간이 4시간 줄어들게 된다. 노조는 주간2교대로 바뀌더라도 이전에 10시간 일할 때 받던 임금을 계속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현대차는 근로시간이 줄더라도 기존 생산물량을 유지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현재 UPH(시간당 생산대수)가 공장별로 55~84UPH 수준인데 이를 최하 64UPH 이상까지 올려야 주간2교대제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주간2교대제 도입 시 출퇴근 교통버스,주차장 등 다른 문제들도 얽혀 있다. B조가 노사 합의에 따라 잔업 1시간을 더 하면 퇴근시간이 다음날 오전 0시50분이다. 대중교통이 끊긴 시간이다. 노조 측은 현재 주요 거점별로 운영하고 있는 퇴근버스 노선을 더욱 확대 운영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차를 갖고 다니는 직원들이 더 늘어나므로 주차장도 함께 늘리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현대차 관계자는 "비용 부담이 크다"고 호소하고 있다.

◆주간2교대 전환 효과 의문

완성차업계가 주간2교대 전환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우는 생산성 향상은 사실 추가적인 고용을 않겠다는 의미다. 근로자 1인당 근로시간이 줄어든다고 새로 채용하는 게 아니라 근로시간당 생산물량을 늘리자는 것.

한국자동차공업협회 관계자는 "자동차산업은 고정비 비중이 높은 대규모 장치산업이라 일시적인 수요 대응을 위한 설비투자와 인력 투입이 불가능하다"며 "연장근로 시간에 대한 엄격한 법적용이 지속될 경우 국내 물량은 축소되고 해외 공장 생산이 확대돼 결국 국내 고용시장만 더 위축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태웅/최진석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