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에 발목잡힌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처리가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끝없는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 수출로 먹고사는 이 나라 경제가 갈 길을 잃고 헤매는 형국이다.

유럽연합(EU)과의 FTA와 마찬가지로 미국과의 FTA는 우리 제도를 선진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세계 10위권에 오른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각종 제도의 선진화와 경쟁을 통해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일이 절실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노동생산성은 미국의 반에도 미치지 못하는데 이는 후진적인 우리 제도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시장의 확대와 경쟁 원리에 따른 성장률의 제고에 대해서는 재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미국과의 FTA가 가져올 고용증대와 정책 운영의 정교화도 중요한 이득이다. 그런 점에서 국제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는 지금 이 나라에서 FTA는 시대적 소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단계에서 FTA를 해야 하는가 아닌가를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보다는 FTA가 가져올 긍정적 · 부정적효과를 저울질해 시급히 FTA 이후를 준비해야 할 때다. 가령 긍정적인 효과를 향유하게 될 기업이나 산업에서 나타나는 편익의 일부를 어떤 형식으로든 징수해 불가피하게 피해를 보는 기업이나 산업,계층에 어떻게 이전시킬 것인지를 마련하는 것도 그 중 하나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FTA의 성과를 어떻게 하면 고루 누릴 수 있도록 하는가에 대해 지혜를 모으는 일이다. 농업부문에 대한 지원을 어떤 재원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중소기업은 또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FTA는 청년실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등을 고려해 우리가 따지고 만들어야 할 제도가 한둘이 아니지 않은가.

지금 야당은 주로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를 문제삼고 있다. 그러나 ISD는 그렇게 위험한 조항이 아니다. 만일 위험한 조항이라면 왜 극히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의 FTA에 포함돼 있겠는가. ISD를 물고 늘어지는 야당, 특히 민주당의 전략은 비열하다. 미국 의회가 ISD 없는 FTA는 가져오지 말라고 의결한 마당이다. 때문에 ISD를 반대하면 미국과의 FTA는 성사될 수 없다고 보고 지금과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다.

한 · 미 FTA에 반대하려거든 차라리 좀 그럴 듯한 문제를 제기해보라.지금 국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판을 보면 1980년대 군부독재시절의 반미시위를 보는 듯하다. 왜 유럽연합(EU)과의 FTA는 되고 미국과의 그것은 안 된다는 것인가. 이를 반미정서 이외에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말인가. 민주당의 이중성을 보면 결국 민주당을 이끌고 갈 인물이 없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반미를 하더라도 좀 그럴 듯하게 하라.얼굴을 드러내지도 못하는 얼치기 반미주의자들은 가라.

고인이 된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미국에 대해 적어도 할 말은 했다고 생각되지만 지금 민주당의 지도부가 하고 있는 것과 같이 숨어서 하는 퇴영적인 반미는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어떤 자세로 외환위기를 극복했는지 상기하라.나아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어떤 열정을 가지고 FTA를 타결했는지 생각해보라.

FTA와 관련해 지금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제도의 개선이다. 국회가 몸싸움을 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실질적인 뭔가를 내놓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 여든 야든 지금의 국회는 내년 총선과 대선만 보고 있는 듯하다. FTA에도,FTA 때문에 피해를 보는 농민,서민,중소기업을 위한 실질적인 제도 개선에도 관심이 없다.

인기영합주의자들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반드시 일어나리라고 본다. 정치권이 국익을 저버리고 한 · 미 FTA를 당리당략으로만 이용한다면 역사의 준엄한 심판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조장옥 < 서강대 경제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