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말의 예술'이다. 정치인의 말은 그래서 중요하다.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의 국회 본회의 직권 상정 문제로 주목을 받고 있는 박희태 국회의장의 화법이 연일 화제다.

은유법과 직설법을 적절히 섞어 자신의 의중을 드러낸다. 말도 화려하지만 깊이 있는 내용이 있어 '외화내실(外華內實)형'이란 소리를 듣는다.

그는 18일 출입기자들과 차를 마시면서 중국 남송시대의 시인 육우의 시 한 구절을 읊었다. "산중수복 의무로(山重水複 疑無路),유암화명 우일촌(柳暗花明 又一村)이라…." 산이 첩첩하고 물이 겹겹이라 길이 없을 것 같아도 버드나무 흩날리고 꽃이 피어오르는 그곳에 또 다른 마을이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박 의장은 "과거 검찰 시절부터 안좋은 일을 당한 후배들에게 써줬던 글"이라며 "나는 (마을이 나타날 것을) 믿는데 이번에는 '무일촌(마을이 없음)'이다. 이런 것을 좀 알아달라"고 말했다. 한 · 미 FTA에 대해 고집을 꺾지 않는 민주당을 향한 은유적인 비판이다.

간결한 표현으로 상황을 예리하게 압축하는 데도 능숙하다. '여야 간 더 이상 합의 가능성이 없는데 시간을 끄는 게 낫다고 보느냐'는 질문에는 "카드가 없다고 손을 빼면 직무유기 아니냐"고 반문하는 식이다. 지난 15일 이명박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의 회동을 마치고 나온 박 의장은 결과를 묻는 기자에게 "봄이 반쯤 왔다"고 답했다.

물론 고민도 많다. 박 의장은 "어떤 국회의장이 합의 처리를 마다하고,다른 방법을 선호하겠느냐"며 "그걸 좋아서 그 길로 간 사람은 없다. 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다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원치 않지만 비준안을 직권상정할 수밖에 없다는 시사다. 박 의장은 "최후의 일각까지 기다리겠다. (그러나) 오래 기다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싶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정당 사상 최장수 대변인을 지냈다. 노태우 정부 시절 4년3개월간 민자당 대변인을 맡으면서 숱한 풍자와 간결한 위트로 '영원한 대변인'이란 별명을 얻었다. '청와대로 통하는 고속도로를 만들겠다''화합이 쇄신이고 쇄신이 화합이다''총체적 난국''남이 하면 불륜,내가 하면 로맨스''정치 9단' 등은 그의 입에서 나왔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