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아지른 듯한 절벽 사이로 숨죽이며 한 걸음 또 한 걸음…7000년 '억겁의 시간'을 걷다
"한 줄기 물이 억겁의 시간을 흐르며 어렵게 내놓은 구멍에 게으른 제비들이 찾아와 집을 짓고 살아서 옌쯔커우(燕子口)라 합니다. 저기 보이시죠? 저 폭포는 가까이 가서 보면 물이 아니라 모래예요. 머리 조심하세요. "

대만 동북부 최대 도시 화롄(花蓮)의 타이루거(太魯閣) 협곡을 지나면서 현지인들에게 자주 듣는 말이다. 타이베이 시내에서 기차로 두 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곳.'대만의 뒷산'이라고도 불리는 4호 국가공원 타이루거국립공원은 대만의 100대 준봉 중 제27위.해발 3743m의 깎아지른 듯한 대리석 절벽이 협곡을 끼고 있어 입구부터 장관을 이룬다.

아침부터 내리던 비가 안개와 구름을 몰고와 절벽 사이에 흰색 덫칠을 해놨다. 보통 화산 활동 후 1만년이 지나야 사화산이 된다. 7000년 된 이 산은 아직도 살아 꿈틀거린다. 타이루거 협곡 입구에서 무료로 나눠주는 헬멧을 쓰고 협곡 속으로 들어가봤다.

대만에는 오래 전부터 계속된 지각운동 때문에 웅대한 산봉우리와 언덕,구불구불 이어지는 해안선 등 아름다운 자연 경관이 많다.

인구 30만명의 도시 화롄에서는 '돌만 팔아도 3대가 먹고 산다'는 말이 있다. 대만의 5대 국제항인 이곳의 대리석은 전부 유럽으로 팔려나간다. 그 말을 듣고 주위를 둘러보니 호텔 욕조,쓰레기통,길가의 보도블록까지 대리석이다.

소수 민족인 다이얄족의 전설적인 추장 타로코의 이름에서 따온 타이루거 협곡은 대리석과 화강암 기암 절벽이 19㎞ 이상 이어진다. 안개 서린 정자와 탑,깎아지른 절벽 사이로 폭포가 긴 물줄기를 뿜어낸다. 높이 200m가 넘는 대리석 사이로 작은 오솔길이 하나 보인다.

원주민 10개 부족이 사는 이곳에는 고산족이 다니는 길이 따로 있다. 아슬아슬하게 이어놓은 구름다리와 더 위태로워 보이는 절벽 사잇길을 지나는 원주민을 운 좋게 만날 수 있었다. 야생화와 찻잎을 말린 뒤 내다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이들은 욕심 없기로 유명하다. 더 운이 좋다면 반달곰이나 꽃사슴 등 야생동물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협곡을 따라 조금 더 들어가자 제비집이라는 뜻의 옌쯔커우가 나타났다. 타이루거 협곡 중 가장 좁은 곳이다. 버스나 택시에서 내려 걸어야 하는 200m 남짓의 길.서로 마주하는 절벽의 간격이 16m밖에 되지 않는다. 수만년 동안 폭풍우와 홍수로 인한 침식작용으로 이 단애가 만들어졌다.

꼬불꼬불한 터널이 수없이 이어지는 옌쯔커우와 주취둥(九曲洞) 끝의 긴 터널을 지나면 '창춘차오(長春橋)'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 다리를 지나자 갑자기 시야가 확 트였다. 산 기슭에 중국 전통 양식의 창춘츠(長春祠)가 보인다. 그 아래 창춘 폭포가 마음을 시원하게 틔워준다. 여기에는 횡단 도로를 건설하다 순직한 사람들의 영령이 모셔져 있다. 중국 국민당 장제스가 대만으로 망명했을 때 동행한 군인들과 죄수들이 곡괭이만 가지고 화롄시에 도로를 뚫었다. 오로지 인간의 힘만으로 서방의 내로라하는 건설사들이 10년 걸린다는 걸 4년 만에 해낸 것.타이루거 도로 공사를 하면서 212명이 사망하고 702명이 다쳤다고 한다. 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1958년 창춘츠를 지었고,1979년 태풍으로 부서진 걸 1980년 다시 건립했다. 1987년 자연재해로 또 무너진 뒤 새로 지었다.

화롄은 원주민 처녀들의 춤과 노래 공연으로도 유명하다. 10여개 부족,8만명의 원주민 중 어메이족(阿美族)이 대다수다. 어메이족은 모계사회라 가장인 어머니를 중심으로 '일처다부제'를 유지하고 있다. 영토가 많을수록 인력이 많이 필요하므로 남편이 많다. 경제 상황에 따라 남편을 버리거나 바꾸는 데 첫 남편은 조강지부라 하여 버리지 못한다.

어메이족 아름다움의 기준은 다리통이 굵고 얼굴과 엉덩이가 큰 여자다. 4~5개 공연장에서 어메이족 전통 춤을 공연한다. 빨간색과 황색이 돋보이는 화려한 무늬 옷을 입고 남녀가 함께 춤을 춘다.

대만의 길거리를 지나다니다 보면 빨간불이 깜빡거리는 가게를 자주 보게 된다. 길거리에도 널려 있다. 졸음을 쫓고 기분을 좋게 한다는 '빙랑(檳 )'이다. 중국 남방지역 사람들이 많이 먹는다. 어떤 외국인들은 "대만이란 나라는 운전사들이 먹여살린다. 피를 토해가며 일하니까"라고 오해할 정도로 운전사들이 많이 먹는다.

야자나무처럼 키 큰 회색 나무가 빙랑 나무.도토리처럼 생긴 열매의 끝부분을 따내고 잎사귀에 싸서 질겅질겅 씹으면 붉은 액체가 흘러나온다. 이 액체만 먹고 나머지는 버린다. 빙랑을 씹으면 몇 분간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얼굴이 화끈거리는 경험을 할 수 있다.


◆ 여행 팁

대만에는 해발 3000m를 넘는 산이 200개가 넘는다. 해안가를 따라 발달한 도시들을 이어주는 것은 1560㎞에 달하는 순환열차다. 타이베이 중앙역에서 화롄까지는 2시간30분 정도 걸린다. 가격은 왕복 700대만달러(3만5000원)이며 10~20분 간격으로 있다. 입석과 좌석의 가격이 같기 때문에 주말에는 미리 예약을 하는 게 좋다. 비행기를 이용하면 쑹산(松山)공항에서 화롄공항까지 1시간 정도 소요된다.

화롄역에 내리면 관광버스와 일반 택시가 즐비하다. 미리 예약한 관광버스를 이용해도 되고,일행이 2인 이상이면 타이루거 협곡 등 주요 관광지까지 투어를 해주는 택시(1000대만달러)를 타도 좋다.

인천~타이베이 왕복은 아시아나,대한항공 등이 1일 1회 운항 중이고,지역항공사인 에어부산이 올초 하루 왕복 1편을 운항하고 있다. 아열대성 기후인 대만은 1~2월은 우기다. 타이베이시와 교외를 여행하려면 1년 중 3~5월이나 9~11월이 적합하다.

화롄=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