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ONG KOREA] 저성장 늪에 빠진 한국…'창조적 과학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STRONG KOREA] 저성장 늪에 빠진 한국…'창조적 과학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발표한 '2012년 세계경제 및 한국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이 모두 냉각돼 내년 성장률이 3.6%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수출과 내수,정부의 경기부양 여력이 동시에 가라앉는다는 설명이다. LG경제연구원 역시 "한국이 저성장 국면에 익숙해졌다"고 분석했다. 한국고용정보원은 급속한 저출산과 고령화 탓에 2018년부터 '마이너스 성장'에 돌입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놨다.

◆제3의 위기를 넘어

전문가들은 현 상황을 '제3의 위기'로 진단한다. 첫 번째 위기는 6 · 25전쟁을 전후한 극심한 혼란과 절대적 빈곤이다. 이를 과학기술을 촉매로 한 대기업 중심의 산업화로 넘었다. 1990년대 말 찾아온 외환위기는 두 번째 위기.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쳐 극복했다. 제3의 위기는 2006년 이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만달러 근처에 머물면서 양극화가 극심해지고 세대 간 갈등이 번지고 있는 현상을 말한다.

금융회사의 과다 이익 추구와 높은 성과급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면서 '금융가 점거 시위'가 잇따르고 있는 것도 이런 기류와 무관치 않다. 김동석 KAIST 금융전문대학원 교수는 "금융상품은 진화하면서 스스로 이익을 극대화하는 한편 헤지(hedge)를 통해 끝없이 복잡해진다"며 "통계적으로 보면 경기불황시 수익률이 '자멸'하는 구조로 돼 있어 위기의 악순환을 불러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산업 · 금융 구조가 고도화되면서 양극화가 심해지고,이것이 고용불안 · 과도한 가계부채 · 천문학적 사교육비 등과 맞물려 성장동력이 소진되는 악순환이 일어난다는 진단이다.

각계가 '대 · 중소기업 상생발전'을 부르짖고 주요 경제단체와 대기업이 '신성장 동력 확보' '창의적 인재 양성'을 강조하는 것은 각 분야에서 비상등이 켜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대기업 위주의 '추격형' 패러다임으로는 더 이상 지속 성장이 어렵다고 보고 있다. 대신 창조형으로 산업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과학기술계도 기업가정신 절실

과학기술과 기업,국가를 이끌 두 축에서 '앙트러프러너십(기업가 정신)'이 발휘될 수 있도록 시스템 혁신을 이뤄야 한다는 게 '스트롱코리아' 캠페인의 취지다. 앙트러프러너십은 '공급은 수요를 창출한다'는 말로 유명한 프랑스 경제학자 J B 세이가 처음 사용했다. 불확실한 환경 속에서 위험을 감수하면서 부를 창출하는 창조형 리더십이다. 스티브 잡스 열풍은 아이폰을 창조(공급)해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수요)을 만든 그의 앙트러프러너십에 대한 평가 때문이다.

2010년 GDP 대비 국가 전체(공공+민간기업) R&D 자금(43조8548억원) 비중은 3.74%로 세계 3위에 올라섰지만 여전히 한국 과학기술은 노벨상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있다. 이광형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는 "사기가 떨어지고 우수 인력이 안 오는데 장비에만 돈을 쏟아붓는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며 "과학자들이 존경받고 신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으면 수조원을 들여도 의미가 없고 성장 정체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창조적 과학기술은 입시에 매몰된 학교에선 습득할 수 없다. 기초연구와 응용연구 사이에서 헤매고 있는 대학에서도 마찬가지다. 장기적 융합 연구는커녕 단기 과제에 매몰돼 정부의 눈치만 보는 출연연구소에선 더욱 그렇다. 교육과학기술부에서 과학기술 관련 조직은 교육에 밀려 거의 다 해체됐다.

정혁 한국생명공학연구원장은 "패러다임 전환이 없으면 대충 여기서 주저앉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정부 정치권 과학자들이 대오각성해 정권이나 장관 교체와는 상관없이 일관되게 추진할 수 있는 '그랜드 비전'을 제시하고 세부 계획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