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이즈 마케팅 교본이 따로 없다. 하루도 안돼 세상을 뒤흔들었으니.정치 · 경제 · 종교 등 갖가지 문제로 대립해온 세계적 지도자 두 사람이 키스하는 합성사진으로 파문을 일으킨 베네통사 얘기다. '언헤이트(Unhate,미워하지 마)'란 주제의 광고는 파격 그 자체다.

키스 사진의 주인공은 이명박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교황 베네딕토 16세와 이집트의 이슬람 종교지도자 아흐메드 엘타옙,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메르켈 독일 총리와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마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등.

존중 · 사랑 · 관용을 바탕으로 한 화해의 상징적 표현이란 해명에도 불구,교황청과 백악관의 항의가 거세자 이탈리아 밀라노 듀오모 광장과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 등에 걸렸던 광고판은 내려진 상태.그러나 언헤이트와 초록색 로고가 선명하게 박힌 사진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천자 칼럼] 베네통 광고
베네통의 도발적 광고는 사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사진작가 올리비에로 토스카니가 광고를 맡았던 1980년대 중반부터 2000년까지 하도 많은 논란을 일으켰던 까닭이다. 인종 · 종교 · 환경 · 범죄 등 사회적 이슈를 다룬 사진엔 백 · 흑 · 황이라고 쓰인 심장 3개,총구멍이 선명한 피투성이 군복, 살인범들의 얼굴 등 별별 게 다 포함됐다. 신부와 수녀의 키스를 담은 1992년 판은 유럽을 발칵 뒤집었다.

이번 광고는 토스카니 퇴진 이후 상품 광고쪽으로 기울었던 베네통이 10년 만에 다시 내놓은 문제작인 셈.때문에 라이벌 업체에 밀린 베네통의 안간힘이란 설도 나온다. 1965년 설립돼 1990년대까지 급성장했던 베네통이 2000년대 들어 후발주자인 자라와 H&M 등에 밀려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는 데 따른 고육책이란 것이다. 어쨌거나 당장 광고를 중단해도 제작비(150억원)의 열 배가 넘는 홍보효과를 거뒀다는 마당이다.

상식을 뒤엎은 광고의 힘이 얼마나 지속될진 알 길 없다. 그러나 충격요법의 효능이 오래 가는 경우는 드물다. 기업의 성장이 멈췄다면 어딘가 탈이 난 게 틀림없다. 중저가 브랜드는 넘치고, 화려하고 선명한 색깔이 더이상 강점이기 어려운 상황에서 베네통의 설 자리는 애매해 보인다. 브랜드 이미지와 타깃 모두 어정쩡한 상태에서 마케팅만으로 이기긴 힘든 법이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