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I, 내년 경제 전망 "경기, 사이클상 둔화세 뚜렷"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내년 경제전망은 세 가지 전제 조건을 달았다. △유럽 재정위기가 국가부도 사태나 국제금융시장의 심각한 교란을 가져오지 않고 △원유도입단가가 연평균 배럴당 100달러 내외를 유지하고 △실질실효환율로 평가한 원화가치가 연평균 5% 안팎 상승한다는 것이다.

세계경제에 큰 위기가 없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시나리오 하에서도 내년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8%로 잡은 것은 그만큼 경기하방 압력이 높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내년 경기는 '상저하고'

KDI, 내년 경제 전망 "경기, 사이클상 둔화세 뚜렷"
현오석 KDI 원장은 "올 하반기 들어 수출이 둔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그럼에도 경기가 더 꺾이지 않은 것은 내수가 뒷받침해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현 원장은 "경기가 사이클상 둔화되고 있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라며 "내년 상반기까지는 이 같은 상황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분기별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전년 동기 대비)을 보면 1분기 4.2%로 잠재성장률 수준의 성장세를 보였으나 2분기와 3분기 들어 3.4%로 주저앉았다. 내년 상반기에는 이보다 더 내려간 3.2%를 기록할 것으로 KDI는 추산했다. 회복세는 내년 하반기부터 본격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KDI 관계자는 "내년은 올해와 반대로 '상저하고' 흐름이 나타날 것"이라며 "내년 4분기에는 전년 동기 대비 5%를 넘는 성장세가 나타날 수도 있다"고 기대했다. 수출 성장률은 내년 상반기 5.0%에 불과하지만 하반기에는 10.9%로 두 배 이상 증가할 것이란 전망이다.

◆"인플레 기대심리 억제해야"

올 하반기 들어 국내외 주요 연구소들이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잇따라 하향 조정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와 LG경제연구원은 지난 9월 내년 성장률 전망치로 KDI보다 낮은 3.6%를 제시했다. 금융연구원도 최근 3.7%로 낮춘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내놨다. 정부가 기존 전망치(4.5%)를 수정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KDI는 그러나 정부의 재정정책을 확장 기조로 전환할 필요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재정건전성 회복에 초점을 맞춘 2011~2015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경기가 예상보다 크게 악화되는 경우를 대비해 재정 여력을 남겨둬야 한다는 것이다. 비과세 · 감면 제도를 개선해 세원을 늘리고 공기업 등 정부지분 매각은 시장여건을 감안,탄력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KDI는 그러나 통화정책에 대해서는 중장기 물가안정에 대한 강력한 정책의지 표명이 필요하다는 주문을 내놨다.

이재준 KDI 연구위원은 "불확실성이 걷히지 않는 한 기준금리를 유지하되 향후 이 같은 상황이 해소될 때 통화정책을 어떻게 하겠다는 식의 구체적인 행동방침을 밝혀 기대 인플레이션을 억제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용 · 복지 연계 확대 필요

노동시장 정책과 관련해서는 근로장려세제(EITC) 등과 같은 고용과 복지를 연계하는 정책을 확대하고 이에 맞춰 최저임금 인상은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아울러 청년층 및 기혼여성 등 취약계층의 고용상황을 감안해 단순 외국인 인력 유입도 제한적으로 운영하고 고급 외국인 인력 유입을 장려하기 위한 포인트제도 도입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제안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