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다 산 목숨인데…北 또 도발만 해봐라"
평화롭기 그지 없었다. 적어도 겉으론 그랬다. 선착장엔 꽃게잡이 배들이 들어왔다 나갔다 했고,바닷가의 주민들은 그물을 다듬고 있었다. 지난해 11월23일 북한으로부터 불시에 포격을 받은 연평도는 마치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평온했다.

그렇지만 좀 더 들여다 보면 상흔이 깊게 남아 있다. 마을 곳곳은 포격으로 무너진 가옥을 짓거나 고치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해병대 부대 진지나 막사도 북한의 포격 흔적을 그대로 보여준다. 지금은 안보전시관으로 쓰이는 연평부대 내 이발소 천장엔 122㎜ 방사포탄이 관통한 지름 1.5m가량의 구멍이 그대로 남아 있다. 해병 K-9 자주포 부대인 포7중대 진지에 남은 화염에 의한 그을음,포탄이 떨어져 움푹 파인 땅,벽면을 할퀸 파편 자국들은 그날의 치열했던 전황을 잘 말해준다. 포7중대는 당시 부대 안과 부근까지 합해 20여발의 집중포격을 받았다.

포격 1년이 지났지만 부대 안은 여전히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다. 병사들은 막사에서 약 100~200m 떨어진 포진지 곁을 24시간 떠나지 않으면서 즉각 대응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11월23일,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는 문구가 부대 곳곳에 적혀 있었다. 이들은 북한의 포격 후 전투식량으로 때우며 2주간을 자주포 안에서 지냈다.

해병대원들은 그날의 기억을 더듬으며 필승의지를 다졌다. 당시 중대장이었던 김정수 대위는 "첫 포격이 있었을 땐 포탄이 어디서 날아왔는지 탐지하려면 시간이 걸려 일단 미리 훈련받은 대로 북한 표적지를 향해 대응을 했다"며 "두 번째 포격을 받았을 땐 정확한 위치를 탐지해 공격에 나섰다"고 했다. 불발탄이 발생해 바로 대응하지 못했던 4포 대원의 안타까움은 더했다. 포반장인 김상혁 중사는 "훈련 중 격발이 안돼 포 안에 있던 잔여탄 처리를 하던 중 피격을 당했다"며 "5포로 곧바로 뛰어가 가감없이 대응 사격 지시를 내렸다"고 말했다. 이어 "또 다시 이런 일이 있으면 북한을 무력화시킬 자신이 있다. 한번만 더 건드려라 하는 각오"라고 전의를 불태웠다.

상처가 다 아문 것은 아니다. 부상한 8명 중 5명이 치료 후 소속 부대로 복귀했다. 경비대대 소속 한규동 병장은 파편을 맞아 입 주변과 왼쪽 볼에 상처를 입었다. 본인이 원하면 다른 부대로 갈 수 있었지만 연평도로 다시 돌아온 이유를 묻자 그는 "왠지 나를 기다리는 것만 같았다"고 말했다. 허벅지 부상을 당했던 이한 병장은 "그때를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다"고 했다. 다만 그는 "그 일을 겪은 후 더 강해졌다. 한번 죽다 살았는데 덤으로 얻은 목숨,이제는 뭐든 할 수 있다"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연평도 해병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벌컨포 사격 훈련 등 북한의 기습침투 상황을 가정한 조치훈련이 하루에 2회 이상 불시에 실시된다. 군 당국은 북한이 다시 도발할 땐 원점지를 초토화시킨다는 전략 아래 첨단무기를 보강하고 있다. 내년까지 연평도와 백령도에 공격형 헬기 격납고와 전방탐지감시대 방호시설을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8월엔 서북도서 일대 작전을 지휘하는 서북도서방위사령부(서방사)가 들어섰고 병력 1000여명이 추가 배치됐다. 전차와 다연장포,신형 대포병레이더 아서(ARTHUR) 등이 전환 배치됐다. K-9 자주포를 대폭 늘렸고,K-10 포탄운반차,AH-1S 코브라 공격헬기,링스헬기,고성능카메라 등도 새로 투입했다.

연평도=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