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ONG KOREA] 실리콘밸리 '패자부활' 문화가 애플ㆍ구글 '성공신화' 만들었다
[STRONG KOREA] 실리콘밸리 '패자부활' 문화가 애플ㆍ구글 '성공신화' 만들었다
MIT 교수 출신인 서남표 KAIST 총장은 "MIT 졸업생 가운데 상위권은 대부분 창업하거나 스타트업 기업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반면 "KAIST 우수 졸업생은 대학 교수가 목표이거나 대기업에 취직한다"고 서 총장은 덧붙였다. 그는 한국과 미국의 창업 생태계가 달라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정부와 대기업의 각종 창업 지원 프로그램에 힘입어 창업이 다시 활기를 띠고 있지만 창업의 '질(質)'은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000년 창업가 가운데 20~30대 벤처기업가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지만 지난해 14%대로 떨어졌다. 50대 이상은 11%에서 30%로 급증했다. 베이비부머(전후세대)들이 은퇴 후 음식점 등 생계형 창업에 나선 결과다.

특히 국가 미래 성장동력으로 꼽히는 고급 연구인력의 '기술창업'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2006년 국내 전체 벤처기업의 16.5%를 차지했던 교수 · 연구원의 벤처기업 점유율은 2007년 12.7%,2008년 10.0%,2009년 9.3%,2010년 9.2%로 떨어졌다.

◆실패 용인하는 창업문화

전문가들은 기술창업이 저조한 데는 여러 원인이 있지만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주된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은행에서 돈을 빌리거나 벤처캐피털의 투자를 받아 창업해도 실패하는 순간 '낙오자'로 찍혀 사회에서 매장되는 분위기다. '착한 독지가'를 만나지 않는 한 재기는 사실상 힘들다.

김홍두 한라그룹 부회장은 "벤처기업인의 도전과 성공을 격려하며 실패할 때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며 "금융지원 제도를 정비하고 이들의 특허와 기술보호 정책 등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에릭 슈미트 구글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다음으로 창업하기 가장 좋은 나라로 이스라엘을 꼽았다. 이스라엘의 성공 요인을 다룬 책 '창업국가'의 저자 사울 싱어는 "이스라엘이 창업에 강한 것은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는 관대한 문화와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 가능했다"고 강조했다. 실패를 용납하지 않으면 도전정신이 살아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1975년 하버드대를 중퇴하고 마이크로소프트를 세운 빌 게이츠,그 이듬해 양부모집 창고에서 창업한 스티브 잡스,그로부터 28년 후 페이스북을 창업한 하버드대 학생 마크 저커버그.이들은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창업해 지구촌 경제사를 새로 썼다.

실리콘밸리에선 실패를 오히려 경력으로 인정해줄 정도로 관대하다. 잡스도 아이폰 · 아이패드가 성공하기 전에 넥스트 리사 등 PC에서 수차례 쓴 잔을 마셨다.
[STRONG KOREA] 실리콘밸리 '패자부활' 문화가 애플ㆍ구글 '성공신화' 만들었다
◆선순환 창업 상태계 조성해야

실리콘밸리의 창업 열기가 식지 않는 것은 '패자부활전'이 가능할 뿐 아니라 풍부한 자금줄이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디어와 도전정신을 믿고 베팅하는 엔젤 투자가 끊이지 않는다. 올해 2분기 중 실리콘밸리에 투입된 벤처캐피털 자금은 30억달러에 달했다.

1998년 허름한 차고에서 창업해 세계 최고 인터넷업체로 성장한 구글의 성공신화 뒤에는 세쿼이아와 클라이너퍼킨스 등 2개의 벤처캐피털이 있었다.

국내 한 벤처캐피털 사장은 "요즘 들어 국내 벤처캐피털 시장에도 자금이 몰리고 있지만 막상 투자하려면 마땅한 기업을 찾기 어렵다"고 전했다. 그는 "창업자들도 의욕만으로 무턱대고 달려들 게 아니라 보다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투자자를 설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돈을 푸는 것 이상으로 창업 교육을 활성화하는 게 절실하다는 것이다.

이주연 한국산업정보학회장은 "기술창업은 상업화부터 마케팅,시장 확보 등 모든 과정을 CEO 혼자서 개척해야 하는 험난한 과정"이라며 "정부가 앞장서 기술인재를 대상으로 한 다양한 창업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재인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아이디어 하나만으로도 창업하고 시장에서 성장 가능성이 검증될 경우 추가 투자나 인수 · 합병(M&A)을 통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선순환 창업 생태계가 조성돼야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도전정신을 가진 젊은이들이 창업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