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지펀드들이 상품투자 비중을 줄이고 있다. 유럽 재정위기가 실물경기 침체로 이어져 원자재 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반면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금 등 귀금속 가격은 꾸준히 오르고 있다.

◆상품시장에서 1주일 새 2조달러 증발

헤지펀드, 원자재 시장서 발뺀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주 18개 미국 선물 · 옵션상품에 대한 매수주문이 전주에 비해 10% 줄었다고 21일 보도했다. 9월27일 이후 가장 큰 하락폭이다. 설탕 가격은 지난주 30% 급락해 2008년 12월 이후 주간 기준으로 최대 하락폭을 보였다. 구리 가격 하락에 베팅한 투자자들은 두 배로 늘었다. 블룸버그는 지난주 글로벌 상품시장에서 총 2조달러가 증발했다고 설명했다. 45개국 시황을 반영하는 MSCI ACWI 지수도 지난주 5일 연속 하락했다.

24개 상품가격을 지수로 만든 S&P GSCI는 지난주 2.6% 떨어져 9월 중순 이후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 24개 품목 중 17개의 가격이 떨어졌다. 천연가스가 7.5% 하락했고 은과 면화는 각각 6.3%,4.9% 떨어졌다. 골드만삭스는 앞으로 12개월간 상품가격이 오를 확률을 20%에서 15%로 하향 조정했다. 내년에도 상품가격이 오름세로 돌아서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S&P GSCI 지수는 32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던 지난 4월 이후 하락세로 전환해 현재까지 15% 떨어졌다. 작년 말 대비로는 2.6% 상승에 그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던 2008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유럽 재정위기 실물 전이 우려

상품투자 시장의 위축은 유럽 재정위기가 실물 부문으로 전이되고 있음을 나타낸다고 블룸버그는 설명했다. 미국 상품투자 회사인 퍼시픽인베스트먼트의 닉 존슨 매니저는 "유럽 위기가 확대되면서 투자자들이 리스크를 줄이려고 상품투자에서 발을 빼고 있다"며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원자재를 사려는 기업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국 상품투자 컨설팅 회사인 로직어드바이저스의 론 로슨 상무는 "시장 밖의 상황이 모든 경제 펀더멘털(기초체력)을 압도하고 있다"며 "불확실성이 강해질수록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매도에 나서게 돼 있다"고 강조했다. 투자 전문 리서치 회사인 EPFR글로벌의 캐머런 브랜트 이사는 "유럽 위기가 최악의 시나리오로 치닫고 있다"며 "전 세계 경제의 동반 침체를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다만 금 등 귀금속에 대한 투자는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주 귀금속 상품펀드에는 8억4900만달러가 유입됐다. 반면 비금속 상품펀드에서는 7억달러가 빠져나갔다. 블룸버그는 헤지펀드들이 4주 연속 금 매수주문을 내고 있다고 전했다. 블룸버그는 "이는 지난 3월 초 이후 가장 오랫동안 매수세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라며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자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으로 몰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