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음하는 '천지창조'…화학물 복원이 화근
루브르박물관을 비롯한 세계 유수의 박물관을 관람하다 보면 수백 년 된 그림들이 마치 화가가 방금 붓을 놓은 것처럼 생생하게 살아 있다. 처음에는 역시 예술을 사랑하는 나라여서 보존을 완벽하게 했으려니 하고 넘겨짚었다.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복원 전문가들의 섣부른 판단이 가져온 의외의 화려함이었다. 이 가련한 명품들은 마치 소멸 직전의 초신성처럼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는 것이다.

불행의 씨앗은 19세기에 예술품 복원술 발달이 본격화하면서 배출된 복원 전문가들에 의해 뿌려졌다. 이 '선무당'들은 성당에 걸렸던 성화의 양초 그을음을 제거하기 위해 호기롭게도 가성소다(양잿물)로 표면을 닦았는데 이게 끔찍한 재앙을 부르게 된다.

그림이 처음엔 원래의 화려한 색깔을 회복한 것처럼 보이지만 곧바로 부식성의 물질이 작품을 파괴하기 시작한다. 잿물이 작품에 가하는 테러는 수십 년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수백 년에 걸쳐 지속되며 이 활동을 인위적으로 중지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루브르 명품의 환한 미소 뒤엔 비극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성형수술 실패의 후유증도 이보다는 덜 심각하리라.

복원술이 가져온 피해는 최근까지도 이어졌다. 1980년부터 1999년까지 20여년에 걸쳐 진행된 미켈란젤로의 시스틴 성당 천장화 '천지창조'가 대표적인 예다. 1999년 12월11일 '천지창조' 복원이 완료되자 전 세계에서 찬사와 비난의 여론이 동시에 쏟아졌다.

한쪽에서는 미켈란젤로의 걸작이 제작 당시의 화려한 색채와 원형을 되찾았다고 환호했지만 다른 한편에선 복원된 작품이 본래의 작품에 치명적인 손상을 가했다고 비난했다.

그림 위에 쌓인 양초 밀랍,니스,동물성 아교의 층을 제거해 작품은 원형을 되찾은 듯했지만 관람 인파가 발산하는 열기와 습기는 물론 먼지와 박테리아에 노출됨으로써 예전에 왁스와 아교로 덮여 있을 때보다 위험에 훨씬 취약해진 것이다. 또 원래의 색채를 되살리려고 약품을 과도하게 투여하는 바람에 명암이 희미해졌고 작품은 예스러운 맛을 잃었다.

이탈리아의 미술사학자 페데리코 제리는 "복원 전문가의 섣부른 복원은 비행기 폭격보다 더 많은 피해를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오늘의 문화재 당국자와 복원 전문가들이 새겨야 할 말이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 미술사학 박사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