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분기감사ㆍ신용평가 의무화해야
올 한 해 금융권을 뒤흔들었던 부실 저축은행 사태는 자본시장에 투자자 보호라는 해묵은 과제를 다시 돌아보게 했다. 10개 부실 저축은행에 대한 검찰의 수사 결과를 보면,불법대출 등 비리 규모가 10조원을 넘어섰고,3조원대의 분식회계가 저질러졌다. 이 같은 비리나 회계부정과 관련한 사회적 비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크다. 금전적 손실보다 더 큰 문제는 비리나 회계부정이 기업의 신뢰성 상실로 이어져 투자자나 채권자 등 이해관계자들을 불안하게 해 자본시장에 대한 심각한 불신을 가져오게 한다는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지금과는 다른 획기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그동안의 제도 개선은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터지고 난 뒤에 이뤄지는 사후적 조치 중심이어서 이해관계자 보호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것은 문제가 발생하거나 커지기 전에 사전적으로 막아주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먼저 상장 · 코스닥기업이나 금융회사 등 이해관계자가 많은 조직은 분기감사와 함께 신용평가가 의무화돼야 한다. 현재 상장 · 코스닥기업은 반기에 약식으로 검토만 받고 연간보고서를 작성할 때 정식으로 회계감사를 받는다. 분기별 검토를 받는 경우는 총자산 5000억원 이상 기업에 국한된다. 분기검토나 분기감사는 기업의 부담을 늘릴 수도 있지만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 본다면,분기마다 정식 감사를 받을 경우 회사는 한꺼번에 집중되는 결산이나 회계감사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외부감사인도 회사 내용을 더 정확히 파악해 부실감사 위험이나 이해관계자들로부터의 소송의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다. 투자자 등 이해관계자들도 지금보다 훨씬 더 신뢰성 있는 정보를 적시에 볼 수 있다는 장점과 함께 분식이나 횡령 등 비리 발생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

신용평가를 받는 대상도 상장기업이나 코스닥기업은 물론 모든 금융회사까지 매년 신용평가를 받도록 의무화해 의사결정자들이 신용위험에 대해 파악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 줄 필요가 있다. 분식이나 횡령 등으로 인한 피해를 사전적으로 방지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내부회계관리나 사외이사제도 등 그 어느 것보다도 유용한 수단이다.

둘째는 상장기업이나 코스닥 기업,금융회사에 대한 회계감사인의 강제지정을 대폭 확대하는 것이다. 현재의 자유경쟁에 의한 수임제도는 근본적으로 기업과 회계법인 간 유착이라는 문제점과 함께 기업은 '갑',회계법인은 '을'이라는 구조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 따라서 과거 결산자료에 중요한 결격 사유가 발견돼 감독당국의 조치를 받았거나 아니면 새로이 상장하는 경우 등에만 지정감사를 받는 현재의 제도를 개편할 필요가 있다. 최소한 상장기업이나 코스닥 등록 기업은 상장 뒤에도 3년 이상 지정감사를 받도록 확대해야 한다. 또한 기업 인수 · 합병(M&A)으로 최대주주가 변경된 기업이나 우회상장기업,중요한 공시위반 기업,신용위험 징후가 있는 기업들과 외국기업은 감사인을 강제로 지정해야 한다. 감사인 강제지정은 회계투명성을 확보해 투자자 등 이해관계자의 '사전적 보호'를 담보하는 최고의 수단이 될 수 있다. 지정제도는 요즘 부각되고 있는 신용평가등급의 신뢰성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현재의 복수기관 평가보다는 평가하는 신용평가회사를 매년 교체하는 것이 신용평가의 독립성과 신뢰성을 확보하는 데 더 효과적인 수단일 것이다.

재무정보는 지식산업의 인프라이며 자본주의에서 의사결정을 위한 최고의 자산이다. 문제가 발생한 뒤가 아닌,사전적으로 이해관계자들을 보호하는 장치가 절실하다. 이와 함께 기업정보와 관련된 전문가 집단 모두가 스스로 변화하는 책임있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한종수 < 이화여대 경영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