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사와 IT부품 국산화…700억 수입 대체"
박종우 삼성전기 사장(59)은 서류 가방을 들고 다니지 않는다. 살인적인 일정이 빼곡히 적혀 있는 수첩과도 이별한 지 오래다. 대신 삼성 갤럭시 탭을 끼고 산다.

23일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에서 열린 수요 사장단 회의에도 박 사장은 갤럭시 탭 10.1만 들고 참석했다. 이동 중에 결재 서류를 보거나 이날 강연 내용을 메모하는 것도 모두 갤럭시 탭으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박 사장은 갤럭시 탭뿐 아니라 잘나간다는 모바일 기기는 출시되는 족족 사고 보는 '얼리 어답터'다. 갓 들어온 신입사원보다 정보기술(IT) 분야에 해박해 50대인 나이가 무색할 정도다. 이유를 묻자 "젊게 사는 게 좋잖아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박 사장이 '모바일 경영'을 하는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삼성전기가 만드는 제품이 모두 IT기기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기의 주력 분야인 적층세라믹콘덴서(MLCC)나 인쇄회로기판(PCB) 모두 휴대폰,컴퓨터,TV 등의 필수 부품이다. 박 사장은 "우리가 만든 부품이 들어간 제품을 써보지 않고 어떻게 부품 경쟁력을 높일 수 있겠냐"며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가능한 한 빨리 대처하기에는 모바일 기기가 안성맞춤"이라고 했다.

스피드를 중시하는 박 사장의 경영 철학은 중소기업과 동반성장에서도 빛을 발했다. 그는 "일본산 일색인 IT부품을 국산화하려면 협력사와 동반성장이 필수"라며 지난 3월 말 국내 협력사들과 공동으로 '부품 국산화 전시회'를 열도록 했다. 행사에 참석한 박 사장은 반도체용 기판을 자르는 기기를 만드는 네온테크라는 회사의 잠재력을 보고 현장에서 공동 개발을 제안했다.

양사 임직원들은 곧바로 협력 태스크포스(TF)를 꾸려 6개월간 연구에 매달린 끝에 반도체용 기판 절단기 국산화에 성공했다. 네온테크와 삼성전기 거래금액은 작년 4억원에서 24억원으로 늘었고 내년엔 51억원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박 사장은 "협력사의 기술력이 삼성전기의 경쟁력이 되고 나아가 국가 경쟁력이 된다"며 협력사와 동반성장을 직접 챙겼다.

덕분에 박 사장이 취임한 2009년 이후 부품 국산화를 통해 삼성전기와 협력사의 거래 금액은 2400억원 이상 증가했고 700억원의 수입 대체 효과를 거뒀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박 사장은 이날 지식경제부로 주최로 열린 대 · 중소기업 동반성장 대상 시상식에서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

박 사장은 "삼성 모든 계열사들이 협력사와 동반성장을 하지 않고 1등 기업이 될 수 없다는 이건희 회장의 지론을 실천하고 있는데 삼성전기가 대표로 상을 받았을 뿐"이라며 몸을 낮췄다.

내년에도 동반성장을 이어가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위기 때 기회가 오기 때문에 내년에도 올해 수준 이상인 8000억원을 투자하겠다"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동반성장에도 더욱 박차를 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바이오 분야에서는 원격진료 시스템 관련 부품을,전기차에서는 후방 카메라 모듈이나 모터 등을 유망 분야로 꼽았다. IT 부품업체에서 바이오 부품업체나 에너지 부품업체 등으로 변화하겠다는 전략이다.

박 사장에게 변화의 중심은 늘 현장이었다. "사무실과 책상 위에는 탁상공론만 있을 뿐이다. 모든 답은 현장에 있다"며 올해부터 대졸 신입사원은 무조건 1년간 생산현장에서 근무하도록 했다.

현장에서의 소통도 강조했다. 그는 과장급 이상 간부들에게 "똑같이 천재였지만 사회와의 관계를 중시한 피카소는 당대에 성공한 삶을 살았고,그렇지 않았던 고흐는 평생 단 한 점의 작품만 팔고 고독하게 죽어갔다"며 소통과 네트워킹 능력을 갖추라고 당부했다. 본인부터 직원들과 대화를 즐겨 해 회사 내에서 박 사장은 "전공은 D램,친화력은 A급 전도체"로 통한다.

박 사장은 연세대와 미국 퍼듀대에서 전기 · 전자공학을 공부하고 1988년 IBM에 들어가 64메가 D램을 연구하다 1992년 삼성전자로 옮겼다.

줄곧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일하다 2001년부터 프린터 사업을 맡아 삼성 레이저 프린터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2009년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총괄 사장에서 삼성전기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