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전 10시5분 국회 638호.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정갑윤 예산안및기금운용계획안조정소위원장은 예정대로 개회를 선언했다. 하지만 정 위원장을 기준으로 왼쪽에 배치된 강기정 박기춘 오제세 주승용 의원 등 4명의 민주당 의원과 임영호 자유선진당 의원의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박근혜 전 대표의 대전 방문을 수행한 이정현 의원을 제외한 6명의 한나라당 소속 위원들은 모두 자리에 앉은 상태였다.

정 위원장은 "여야 간사가 합의한 바대로 법정시한 내 예산안 처리는 물론 심도 있는 심사를 위해선 시간을 많이 확보해야 하는데 상황이 매우 아쉽다"며 "그러나 집 나간 식구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야당 위원들의 출석을 기다리겠고,그때까지 의사 일정은 유보한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의 입장은 매우 조심스러웠다. 원활한 처리를 위해 야당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정 위원장은 기자에게 "(야당 간사인) 강기정 의원과 자주 전화통화를 하고,설득하고 있다"며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도 만나 의사 일정에 협조를 부탁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정 위원장의 발언이 끝나자 한나라당 의원들은 민주당에 화살을 돌렸다.

강 의원과 예산 심사 과정에서 사사건건 부딪치고 있는 구상찬 의원은 "예산은 서민을 위한 것인 만큼 빨리 통과돼야 한다"며 "야당은 정치는 정치고,예산은 예산이라는 마음을 가져야 하며,시간이 지날수록 부실 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고 압박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한나라당이 먼저 약속을 깼다며 예산안 심사 소위에 불참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강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예산안을 먼저 처리하고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을 미루자는 야당의 요구를 들었어야 했다"며 "당의 입장이 국회 일정을 보이콧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일(24일)도 회의에 참석하긴 힘들 것"이라고 했다. 예산안은 지난 17일 부별 심사를 마치고 예결위 조정소위원회에 상정됐으며,다음달 1일까지 심사를 마치고 2일 본회의에서 의결하도록 한다는 게 당초의 여야 합의 사항이었다.

야당의 예산 심사 보이콧으로 예산안의 법정기한(12월2일) 내 처리 가능성은 낮아지고 있다. 작년에 이어 한나라당이 단독 처리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날 예산 심사 대상 기관이었던 기획재정부 소속 공무원 30여명은 오전 10시께 국회 소회의실 복도에서 대기하다 정회가 선포되자 발길을 돌렸다. 재정부 고위 공무원은 "소위 개최 여부가 예결위를 통해 전달되는데,아예 열리지 않는다고 통보받으면 헛걸음을 하지 않겠지만 오늘처럼 일단 개회만 돼도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산회가 아닌 정회 상태이므로 국회 근처에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