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외교통상부가 발간한 '외교백서'에는 '전 세계 주요 교역국 가운데 인접국 간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되지 않은 유일한 지역'이라는 말이 있다. 한국과 중국,일본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한 · 중 · 일 3국은 1999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경제협력을 위한 공동 연구에 합의했다. 그 뒤 나라별로 연구보고서도 만들었다. 하지만 추가 협의는 더 이상 진행되지 않고 있다. 한 · 중 · 일 3국은 인접해 있어 FTA의 효과뿐만 아니라 부작용도 극명하게 드러날 것으로 우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한국이 유럽에 이어 미국과의 FTA를 내년 1월 발효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중국,일본과의 FTA 협상이 현안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한국에 FTA 강공 펼칠 듯

[한ㆍ미 FTA 통과 이후] "美ㆍEU와 시장 튼 한국 잡아라"…中ㆍ日 'FTA 러브콜'
중국은 한 · 미 FTA 비준 이전부터 한국에 FTA 협상을 조속히 시작하자고 여러 차례 요청했다. 올해 4월 김황식 총리 방중 때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는 한국 정부에 FTA 협상 개시를 공식 요청했다. 지난달 한국을 방문한 리커창(李克强) 부총리도 "국제 금융시장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중 · 한 간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양국 경제 성장에 중요하다"고 촉구했다.

중국이 한 · 중 FTA를 적극 추진하는 것은 미국,EU와 FTA를 체결한 한국을 적절히 활용하면 대미,대유럽 수출을 늘릴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농수축산물 수출 확대에도 적지 않은 기대를 걸고 있다.

◆일본,TPP 러브콜

일본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한국을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TPP는 싱가포르 · 뉴질랜드 · 칠레 · 브루나이가 2006년 체결한 통상 협정이다. 농수산물을 포함한 모든 품목에 즉시 혹은 10년 내 관세 철폐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미국은 2009년 11월 TPP 참여를 선언했다. 일본은 TPP 참여를 위해 특별대표를 신설한 것으로 23일 알려졌다. 일본이 TPP에 참여할 경우 TPP 내 국내총생산(GDP) 비중의 91%를 미국과 일본이 차지하게 된다.

미국과 일본 모두 TPP에 적극적인 이유는 상호 경제동맹을 통해 경제적인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필요성 때문이다. 한국에 TPP 참여 러브콜을 지속적으로 보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기에다 일본은 장기 침체,내부 성장동력 고갈,동일본 대지진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자국 경제의 돌파구로 TPP를 활용하겠다는 심산이다.

◆몸값 올라가는 한국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 · 중 FTA가 발효되면 17조9000억원(2.3%)의 GDP 증가,제조업 분야에서는 26억달러의 무역흑자 확대가 기대된다. 고급 제품과 중간재,부품 수출이 늘어 무역수지가 증가한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만의 FTA 경제효과만 봤을 때는 GDP가 0.35% 증가하는 것으로 삼성경제연구소는 예측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유보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우선 한 · 중 FTA를 체결하면 중국의 저가 완제품과 농수산물 수입이 늘어 중소기업과 농수산업이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TPP에 대해서도 조심스럽다. 한국은 지난해에만 일본으로부터 333억달러의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고,부품과 완성품 시장 등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탓이다.

그러나 중국 시장이 워낙 크고 일본의 강점도 많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는 3국 간 FTA 체결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지금까지 중국,일본과의 FTA 협상을 미뤄온 것은 국내 산업에 대한 보호 대책이 제대로 서 있지 않은 상태에서 물꼬를 트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판단 때문"이라며 "하지만 한 · 미 FTA가 발효되고 그 효과가 증명되면 자연스럽게 중국,일본과의 FTA 논의도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