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만원짜리 TV도 ‘뱅앤올룹슨’ 손 거치면 2억 넘는 명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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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st Practice - 초고가 가전시장 최강자 덴마크 '뱅앤올룹슨'
전자제품은 단순한 기기 아닌 집의 가치 높여주는 인테리어
오디오· 조명 등 ‘리모컨 하나로’홈인터그레이션 시스템 집중
품질위해 해외 하청 안맡겨 깐깐한 디자인 자존심 유명
전자제품은 단순한 기기 아닌 집의 가치 높여주는 인테리어
오디오· 조명 등 ‘리모컨 하나로’홈인터그레이션 시스템 집중
품질위해 해외 하청 안맡겨 깐깐한 디자인 자존심 유명
“스티브 잡스는 디자인이 뛰어나고 섬세하게 만들어진 물건에 애착이 컸다. 포르쉐 스포츠카, 헨켈 칼, BMW 오토바이, 뵈젠도르퍼 피아노, 그리고 뱅앤올룹슨 오디오가 대표적이다.”
지난달 출간된 잡스의 공식 전기에는 덴마크 명품 가전업체 뱅앤올룹슨이 자주 언급된다. 매킨토시, 아이폰 등을 통해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잡스가 롤모델로 삼은 기업 중 하나가 뱅앤올룹슨이다. 고교 시절 값비싼 뱅앤올룹슨 헤드폰을 살 수 없었던 그는 헤드폰 사진을 들고 다니며 시간이 날 때마다 꺼내봤을 정도였다.
뱅앤올룹슨은 오디오, TV, 스피커, 전화기, 홈인터그레이션 시스템(집안의 가전제품을 통합해 관리하는 시스템) 등을 주로 생산한다. TV 한 대 가격이 싼 것은 3000만원, 비싼 것은 2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마니아들 덕분에 금융위기에도 꾸준한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뱅앤올룹슨이 만드는 것은 가전제품이라기보다 고급 가구의 느낌”이라고 평가했다.
◆모바일 통한 가전제품 통합
1925년 설립돼 초고가 가전제품 시장의 최강자로 군립해 온 뱅앤올룹슨은 요즘 홈인터그레이션 시스템에 집중하고 있다. 전자제품이 단순한 전자기기가 아니라 ‘집의 가치를 높여주는 인테리어’라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뱅앤올룹슨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서다.
홈인터그레이션 시스템은 TV 오디오 컴퓨터 등 가전제품뿐 아니라 실내 조명 등 집안의 모든 전자기기를 하나의 장치로 조종하는 것을 말한다. 브라이언 비욘 한센 뱅앤올룹슨 홈인터그레이션 부문 수석매니저는 “Beo4, Beo6 등 뱅앤올룹슨의 고급 리모컨시스템뿐 아니라 아이폰 등 스마트폰으로 홈인터그레이션을 운용하는 기술을 개발해 이를 응용한 홈인터그레이션 시스템을 판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홈인터그레이션 시스템은 3개 이상의 뱅앤올룹슨 제품을 연결해야 하기 때문에 이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서는 많게는 수십억원이 들어간다. 하지만 뱅앤올룹슨은 중국 인도 등 신흥국 부자들이 늘고 있어 홈인터그레이션의 수요는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투에 만토니 뱅앤올룹슨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독일 경제주간지 비르트샤프츠보케와의 인터뷰에서 “요즘 들어 고객이 아파트나 빌라의 인테리어 자체를 뱅앤올룹슨에 맡기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뱅앤올룹슨이 단순한 가전제품 회사가 아니라 주거문화를 바꾸는 회사란 증거”라는 설명이다. 회사 측은 홈인터그레이션 시스템이 정착되면 가전제품을 한 개 파는 것보다 훨씬 많은 마진을 남겨 회사 수익성 향상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뱅앤올룹슨이 공을 들이고 있는 또 다른 분야는 자동차용 가전제품이다. 뱅앤올룹슨이 차량용 오디오 시스템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2005년. 아시아에서 벤츠 BMW 등 독일산 자동차 판매가 크게 늘고 있어 차량용 오디오 시장의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하반기 BMW용 카오디오를 생산하기 시작함으로써 독일의 3대 럭셔리카 브랜드(BMW 벤츠 아우디)에 들어가는 제품을 모두 생산하는 업체가 됐다. 현재 뱅앤올룹슨 전체 매출에서 자동차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15% 정도다.
젊은층도 이 회사의 새로운 고객이 되고 있다. 만토니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뱅앤올룹슨이 500유로(77만원)짜리 헤드폰을 생산하고 있는 것은 젊은이들에게 다가서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아이폰과 결합해 사용할 수 있는 스피커 등 모바일 기기용 제품들도 더 많이 생산할 것”이라고 밝혔다.
뱅앤올룹슨의 이 같은 전략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더욱 강화되고 있다.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소비자들이 지출을 줄이며 명품 업체인 뱅앤올룹슨도 타격을 입었다. 2008~2009회계연도(2008년 6월~2009년 5월)에는 2000년대 들어 처음으로 2억1000만크로네(432억원)의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홈인터그레이션 시스템과 신흥시장을 집중 공략, 위기를 극복했다. 2010~2011회계연도 순이익은 2억9900만크로네(618억원)로 2009~2010회계연도(2억1200만크로네)에 이어 2년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해외 하청 안 맡기는 고집
뱅앤올룹슨의 성공 방식은 다른 가전제품 업체들과 다르다. 삼성 소니 등이 동시에 가격 및 품질 경쟁력을 확보하려고 애쓰는 사이 뱅앤올룹슨은 가격경쟁력을 포기하고 품질과 디자인에 ‘올인’했다.
설립된 지 80년이 넘었지만 해외 공장이 하나도 없는 것도 품질에 대한 집착 때문이다. ‘하청을 맡기지 않는다’는 회사의 방침에 따라 외주제작도 없다. 일반 가전업체들이 중국 등 인건비가 싼 곳에 공장을 지으며 가격 경쟁에 나섰지만, 뱅앤올룹슨은 해외 진출을 포기했다. 뱅앤올룹슨 제품 가격이 다른 회사 제품의 수십배, 수백배가 돼도 고객들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뱅앤올룹슨에는 공장 자동화도 주요 관심사가 아니다. 뱅앤올룹슨 제품들은 아직도 수(手)작업 비율이 50%가 넘는다. 특히 스피커 등 ‘소리’의 질이 중요한 제품들은 철저하게 수작업 원칙을 지키고 있다.
품질과 더불어 뱅앤올룹슨을 최고로 만든 것은 디자인이다. 뱅앤올룹슨의 디자인 철학은 단순함과 실용성이다. 이는 겨울이 길고 추운 덴마크의 날씨와 무관하지 않다. 덴마크 사람들은 눈이 많이 오는 환경 때문에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다. 이 때문에 오래 봐도 질리지 않고 편리한 디자인을 선호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적으로 음악 건축 패션분야에서 미니멀리즘(단순함과 간결함을 추구하는 예술적 흐름)이 유행하자 뱅앤올룹슨의 디자인은 더욱 주목을 받았다.
뱅앤올룹슨은 디자인 개발 과정에서 컴퓨터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는다. 다른 회사들이 대부분 사용하는 CAD프로그램(컴퓨터 그래픽으로 제품 디자인을 만드는 프로그램)도 쓰지 않는다. 대신 컨셉트 단계부터 최종 단계까지 매번 실물과 똑같은 생김새의 디자인 모델을 만든다. 가격경쟁력이 없어 도태될 것처럼 보이는 뱅앤올룹슨이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은 품질과 디자인에 대한 집착 때문이라는 평가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
지난달 출간된 잡스의 공식 전기에는 덴마크 명품 가전업체 뱅앤올룹슨이 자주 언급된다. 매킨토시, 아이폰 등을 통해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잡스가 롤모델로 삼은 기업 중 하나가 뱅앤올룹슨이다. 고교 시절 값비싼 뱅앤올룹슨 헤드폰을 살 수 없었던 그는 헤드폰 사진을 들고 다니며 시간이 날 때마다 꺼내봤을 정도였다.
뱅앤올룹슨은 오디오, TV, 스피커, 전화기, 홈인터그레이션 시스템(집안의 가전제품을 통합해 관리하는 시스템) 등을 주로 생산한다. TV 한 대 가격이 싼 것은 3000만원, 비싼 것은 2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마니아들 덕분에 금융위기에도 꾸준한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뱅앤올룹슨이 만드는 것은 가전제품이라기보다 고급 가구의 느낌”이라고 평가했다.
◆모바일 통한 가전제품 통합
1925년 설립돼 초고가 가전제품 시장의 최강자로 군립해 온 뱅앤올룹슨은 요즘 홈인터그레이션 시스템에 집중하고 있다. 전자제품이 단순한 전자기기가 아니라 ‘집의 가치를 높여주는 인테리어’라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뱅앤올룹슨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서다.
홈인터그레이션 시스템은 TV 오디오 컴퓨터 등 가전제품뿐 아니라 실내 조명 등 집안의 모든 전자기기를 하나의 장치로 조종하는 것을 말한다. 브라이언 비욘 한센 뱅앤올룹슨 홈인터그레이션 부문 수석매니저는 “Beo4, Beo6 등 뱅앤올룹슨의 고급 리모컨시스템뿐 아니라 아이폰 등 스마트폰으로 홈인터그레이션을 운용하는 기술을 개발해 이를 응용한 홈인터그레이션 시스템을 판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홈인터그레이션 시스템은 3개 이상의 뱅앤올룹슨 제품을 연결해야 하기 때문에 이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서는 많게는 수십억원이 들어간다. 하지만 뱅앤올룹슨은 중국 인도 등 신흥국 부자들이 늘고 있어 홈인터그레이션의 수요는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투에 만토니 뱅앤올룹슨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독일 경제주간지 비르트샤프츠보케와의 인터뷰에서 “요즘 들어 고객이 아파트나 빌라의 인테리어 자체를 뱅앤올룹슨에 맡기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뱅앤올룹슨이 단순한 가전제품 회사가 아니라 주거문화를 바꾸는 회사란 증거”라는 설명이다. 회사 측은 홈인터그레이션 시스템이 정착되면 가전제품을 한 개 파는 것보다 훨씬 많은 마진을 남겨 회사 수익성 향상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뱅앤올룹슨이 공을 들이고 있는 또 다른 분야는 자동차용 가전제품이다. 뱅앤올룹슨이 차량용 오디오 시스템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2005년. 아시아에서 벤츠 BMW 등 독일산 자동차 판매가 크게 늘고 있어 차량용 오디오 시장의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하반기 BMW용 카오디오를 생산하기 시작함으로써 독일의 3대 럭셔리카 브랜드(BMW 벤츠 아우디)에 들어가는 제품을 모두 생산하는 업체가 됐다. 현재 뱅앤올룹슨 전체 매출에서 자동차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15% 정도다.
젊은층도 이 회사의 새로운 고객이 되고 있다. 만토니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뱅앤올룹슨이 500유로(77만원)짜리 헤드폰을 생산하고 있는 것은 젊은이들에게 다가서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아이폰과 결합해 사용할 수 있는 스피커 등 모바일 기기용 제품들도 더 많이 생산할 것”이라고 밝혔다.
뱅앤올룹슨의 이 같은 전략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더욱 강화되고 있다.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소비자들이 지출을 줄이며 명품 업체인 뱅앤올룹슨도 타격을 입었다. 2008~2009회계연도(2008년 6월~2009년 5월)에는 2000년대 들어 처음으로 2억1000만크로네(432억원)의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홈인터그레이션 시스템과 신흥시장을 집중 공략, 위기를 극복했다. 2010~2011회계연도 순이익은 2억9900만크로네(618억원)로 2009~2010회계연도(2억1200만크로네)에 이어 2년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해외 하청 안 맡기는 고집
뱅앤올룹슨의 성공 방식은 다른 가전제품 업체들과 다르다. 삼성 소니 등이 동시에 가격 및 품질 경쟁력을 확보하려고 애쓰는 사이 뱅앤올룹슨은 가격경쟁력을 포기하고 품질과 디자인에 ‘올인’했다.
설립된 지 80년이 넘었지만 해외 공장이 하나도 없는 것도 품질에 대한 집착 때문이다. ‘하청을 맡기지 않는다’는 회사의 방침에 따라 외주제작도 없다. 일반 가전업체들이 중국 등 인건비가 싼 곳에 공장을 지으며 가격 경쟁에 나섰지만, 뱅앤올룹슨은 해외 진출을 포기했다. 뱅앤올룹슨 제품 가격이 다른 회사 제품의 수십배, 수백배가 돼도 고객들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뱅앤올룹슨에는 공장 자동화도 주요 관심사가 아니다. 뱅앤올룹슨 제품들은 아직도 수(手)작업 비율이 50%가 넘는다. 특히 스피커 등 ‘소리’의 질이 중요한 제품들은 철저하게 수작업 원칙을 지키고 있다.
품질과 더불어 뱅앤올룹슨을 최고로 만든 것은 디자인이다. 뱅앤올룹슨의 디자인 철학은 단순함과 실용성이다. 이는 겨울이 길고 추운 덴마크의 날씨와 무관하지 않다. 덴마크 사람들은 눈이 많이 오는 환경 때문에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다. 이 때문에 오래 봐도 질리지 않고 편리한 디자인을 선호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적으로 음악 건축 패션분야에서 미니멀리즘(단순함과 간결함을 추구하는 예술적 흐름)이 유행하자 뱅앤올룹슨의 디자인은 더욱 주목을 받았다.
뱅앤올룹슨은 디자인 개발 과정에서 컴퓨터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는다. 다른 회사들이 대부분 사용하는 CAD프로그램(컴퓨터 그래픽으로 제품 디자인을 만드는 프로그램)도 쓰지 않는다. 대신 컨셉트 단계부터 최종 단계까지 매번 실물과 똑같은 생김새의 디자인 모델을 만든다. 가격경쟁력이 없어 도태될 것처럼 보이는 뱅앤올룹슨이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은 품질과 디자인에 대한 집착 때문이라는 평가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