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정권 2007년 합의…쇠고기 문제로 '암초'…2010년 추가 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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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전격 통과 - 굴곡 많았던 4년5개월
의욕 보이지 않던 백악관·共和…"일자리 창출 동력 삼자" 대타협
의욕 보이지 않던 백악관·共和…"일자리 창출 동력 삼자" 대타협
한·미 FTA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6년 1월 신년연설에서 "개방과 경쟁을 통해 세계 일류로 가겠다"며 협상 의지를 천명한 후부터 시작됐다. 이어 2월에는 김현종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 의회에 출석해 본격적인 협상 출범을 선언했다.
양국은 이후 총 8차례의 공식 협상을 통해 2007년 4월 초 합의에 이르렀다. 그러나 양국 의회 비준의 벽은 너무나도 높았다. 미국 민주당 인사들은 공화당 소속인 부시 행정부가 합의해준 한·미 FTA에 대해 자동차와 쇠고기 문제를 들어 유보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초 한·미 FTA에 별다른 의욕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일자리 창출이 최우선 정책순위로 부상하면서 오바마 대통령의 생각도 바뀐다. 분기점은 2010년 6월 캐나다에서 열린 토론토 한·미 정상회담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때 처음으로 한·미 FTA에 대한 진전된 입장을 밝혔다.
백악관 내에서는 한·미 FTA를 미국 내 일자리 창출의 동력으로 삼겠다는 기류가 점차 확산됐다. 미국은 자동차 분야 등 자신들이 불리한 사안에 대해 추가협상을 원했고 한국은 이에 응했다. 추가협상이 지난해 12월 타결되자 오바마 행정부는 본격적인 비준 절차에 돌입했다.
미국 정치권이 재정적자 감축 협상에 올인하면서 한국 정부가 원했던 여름 휴회 전 FTA 비준도 무산됐다. 대신 백악관과 공화당 지도부는 휴회 기간 극적인 타협을 이뤘다.
이에 따라 미국 상·하원은 지난 10월 마침내 한·미 FTA 이행법안을 가결한다. 때맞춰 이뤄진 이명박 대통령의 국빈 방문도 비준 일정을 앞당기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공이 한국 국회로 넘어오자 이번엔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에서 발목을 잡았다. 특히 한·미 FTA에 포함된 투자자 국가 소송제도(ISD) 조항을 놓고 여야 간 입씨름이 벌어졌다. 이 대통령이 급기야 ISD 재협상을 약속하는 등 야당 요구를 대폭 수용했음에도 야당 측은 물러서지 않았다.
한나라당은 22일 기습적인 본회의 단독 표결 처리에 성공함으로써 6년에 가까운 긴 여정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
양국은 이후 총 8차례의 공식 협상을 통해 2007년 4월 초 합의에 이르렀다. 그러나 양국 의회 비준의 벽은 너무나도 높았다. 미국 민주당 인사들은 공화당 소속인 부시 행정부가 합의해준 한·미 FTA에 대해 자동차와 쇠고기 문제를 들어 유보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초 한·미 FTA에 별다른 의욕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일자리 창출이 최우선 정책순위로 부상하면서 오바마 대통령의 생각도 바뀐다. 분기점은 2010년 6월 캐나다에서 열린 토론토 한·미 정상회담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때 처음으로 한·미 FTA에 대한 진전된 입장을 밝혔다.
백악관 내에서는 한·미 FTA를 미국 내 일자리 창출의 동력으로 삼겠다는 기류가 점차 확산됐다. 미국은 자동차 분야 등 자신들이 불리한 사안에 대해 추가협상을 원했고 한국은 이에 응했다. 추가협상이 지난해 12월 타결되자 오바마 행정부는 본격적인 비준 절차에 돌입했다.
미국 정치권이 재정적자 감축 협상에 올인하면서 한국 정부가 원했던 여름 휴회 전 FTA 비준도 무산됐다. 대신 백악관과 공화당 지도부는 휴회 기간 극적인 타협을 이뤘다.
이에 따라 미국 상·하원은 지난 10월 마침내 한·미 FTA 이행법안을 가결한다. 때맞춰 이뤄진 이명박 대통령의 국빈 방문도 비준 일정을 앞당기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공이 한국 국회로 넘어오자 이번엔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에서 발목을 잡았다. 특히 한·미 FTA에 포함된 투자자 국가 소송제도(ISD) 조항을 놓고 여야 간 입씨름이 벌어졌다. 이 대통령이 급기야 ISD 재협상을 약속하는 등 야당 요구를 대폭 수용했음에도 야당 측은 물러서지 않았다.
한나라당은 22일 기습적인 본회의 단독 표결 처리에 성공함으로써 6년에 가까운 긴 여정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