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한전의 반란인가, 꼼수인가
한국전력공사 이사회가 정부와 사전협의 없이 10%대 전기요금 인상안을 의결한 것이 논란이다. 전기요금이 지식경제부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 협의로 결정돼 왔다는 점에서 일단 놀랍다. 전기요금 인상을 적극 추진하지 않았다고 소액주주로부터 소송당한 김쌍수 전 사장은 이사회 결정이 한전의 당연한 권리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물가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는 재정부 압박용으로 지경부와 한전이 짜고치는 고스톱을 했다는 루머도 나돈다. 어쨌든 공기업 한전이 원가 이하로 전기를 판매하고 그래서 매년 수조원씩 적자가 나는 상황을 우려해 행동에 나선 것이라면, 그 자체는 인정해 줄 만도 하다. 적어도 나몰라라하는 공기업이 되길 거부한 측면은 있다.

그동안 전기요금 결정과정, 수준 및 체계에 문제가 있었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다. 국제 에너지가 상승으로 원가가 치솟아도 요금은 요지부동이었다. 공공요금을 묶어 표를 얻는 '표퓰리즘'이 시장원리를 압도하고 말았다. 그런 판에 수요 조절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가격이 싸니 전기소비가 급등하는 건 당연했다. 심야전기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기름 보일러를 쓰던 식당은 전기난방으로 바꿨다. 여름에는 냉방,겨울에는 난방으로 전기를 마구 써댔다. 그 결과는 지난 9월의 순환단전, 향후 수년간의 만성적 전력부족, 그리고 한전의 엄청난 적자로 나타났다. 규제의 실패,정부의 실패다.

그렇다고 한전이 전기요금을 알아서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다. 정부는 더 이상 전기가격 결정에 왈가왈부하지 말라지만 그것은 경쟁의 원리에 의해 시장에서 결정될 때나 가능한 얘기다. 우리도 10여년 전부터 전력산업에 경쟁을 도입,효율을 높이려는 시도를 해왔다. 하지만 구조개편은 하다만 꼴이 되고 말았다. 진입규제는 가격규제를 수반한다. 독점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상황에서 소비자 보호를 위한 가격규제는 불가피하다. 경영효율은 뒷전인 채 전기요금으로 편하게 장사하는 독점의 폐해는 설명이 필요없다. 한전 이사회 결정은 독점이나 다름없는 공기업이 가격규제를 무시하겠다는 얘기로 들릴 수도 있다.

더구나 틈만 나면 재통합을 외치는 한전이다. 8년 전 노조 반발로 배전분할이 무기 연기된 게 그 서막이었다. 이명박 정부가 공기업 개혁을 추진하자 한전은 해외시장 진출,발전 자회사들로 인한 인사 · 경영 비효율성 등을 이유로 재통합론을 들이댔다. 2009년 국정감사에서는 발전 자회사들의 통합구매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해 말 아랍에미리트(UAE) 원전건설 수주 때도 재통합론이 나왔다. 정전사태가 터지자 이번에는 전력거래소의 계통운영권을 한전으로 이관하라고 요구한다. 과거의 완전한 독점으로 되돌아가자는 거다.

지경부는 스마트그리드가 되면 장관을 물러나게 한 정전사태는 없을 거라고 말한다. 한전은 스마트그리드를 위해서도 전기요금 현실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모두가 스마트그리드를 말하지만 전력시장이 독점적이고 가격이 원활하게 움직이지 않는 상황에서는 실현될 수 없다. 스마트그리드의 최대 적은 다름 아닌 한전이라는 얘기는 그래서 나온다. 한전 이사회의 전기요금 인상안 의결이 의미있는 반란의 시작인지,꼼수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꼼수라면 곧 지경부의 꼼수이기도 하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