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되면서 각종 모임과 행사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보내는 경우가 많다. 친구들이나 동료 등 신경 써야 할 사람이 많지만,잊지 말고 꼭 챙겨야 할 사람이 있다. 바로 부모님이다.

옛말에 '혼정신성(昏定晨省)',밤에는 부모의 잠자리를 봐드리고 아침에는 밤새 안부를 묻는다는 말이 있다. 부모의 건강을 살펴 효도하는 자식의 도리를 함축한 사자성어다. 항상 건강이 염려되지만 그때마다 '괜찮다'는 대답만 돌아오니 평소 건강이 어떤지 알 턱이 없다. 퇴직한 지도 오래여서 직장 건강검진을 받을 일도 없다. 이번 연말은 그간 챙기지 못한 부모님의 건강을 점검해보는 것을 어떨까. 전화를 걸어 물어보거나 곁에서 살펴보면 그동안 몰랐던 질병을 발견할 수도 있다.

◆얼굴색 보랏빛이면 심장 · 폐 질환 의심

얼굴색이 노란빛을 띤다면 간이나 담낭 · 췌장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럴 땐 부모님에게 밥맛은 있는지,간혹 구역질이 나는지,피곤함을 자주 느끼는지 물어봐야 한다. 얼굴빛이 연한 보랏빛을 나타내면 혈액이 원활하게 돌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심장이나 폐 이상을 의심해봐야 한다. 평소 고혈압이나 당뇨병이 있는데 얼굴이 예전보다 푸석하게 보이고 검다면 콩팥에 합병증이 왔을 가능성도 있다. 소변에 피가 섞여 있는지도 간단하게 물어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소변 색이 갈색이라면 간염이나 요로결석 · 담도암 · 췌장암 같은 질환을 의심할 수 있다. 만약 소변이 주황색을 띤다면 피가 섞여 있을 가능성이 크므로 전립선염이나 신장염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몸무게 줄었다면 암 검사 권유해야

국민건강영양조사를 보면 노인의 가장 큰 영양 문제는 영양 결핍이다. 당뇨병 · 고혈압 · 고지혈증 등 만성질환이 있다면 식욕 부진까지 겹쳐 악순환이 이어진다. 결국 체중 감소와 면역력 저하로 이어져 합병증을 키울 수 있다. 가끔은 부모님의 몸무게를 물어보자.체중은 건강의 바로미터다. 6개월 동안 체중이 5㎏ 이상(또는 몸무게의 약 10%) 빠지면 여러가지 질병을 의심할 수 있다. 체중 감소는 암의 중요한 전조 증상 중 하나다. 암은 정상 세포가 사용해야 할 에너지를 앗아가 기생하는 소모성 질환이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부쩍 소화가 안되고 속이 더부룩하다면 위암 검사를 권해드릴 필요가 있다. 증상은 말할 때 입에서 역한 냄새가 난다.

◆TV 자막 군데군데 안 보이면 망막 이상

키가 예전보다 작아진 느낌이 든다면 퇴행성 관절염을 생각해볼 수 있다. 주로 무릎에 많이 나타난다. 관절염이 있으면 양쪽 무릎이 붙지 않는 '오자형' 다리가 되고 결국 키가 작아진다. 무릎 사이에 주먹 하나가 들어가면 관절염이 많이 진행된 상태다. 걸을 때 관절의 마찰로 '뿌드득' 소리도 난다. 척추를 구부정하게 만드는 퇴행성 척추질환과 골다공증도 키에 영향을 준다. 엉덩이부터 허벅지 · 종아리까지 찌릿찌릿한 것도 퇴행성 척추질환의 증상이다. 다리로 내려가는 신경을 누르는 척추관 협착증을 보이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잠을 잘 때 바로 눕지 못하고 옆으로 새우잠을 자면 척추질환일 수 있다.

시력이 떨어져 오랜만에 찾아온 자식과 손자 · 손녀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것만큼 답답한 게 있을까. 눈의 불편함을 호소하는 유형을 살피면 황반변성 · 녹내장 · 당뇨병성망막증 등 3대 실명 질환을 의심할 수 있다. 당뇨병이 있는데 TV 자막을 군데군데 보지 못하면 망막의 모세혈관이 고장 난 당뇨병성 망막증을 의심한다.

부모님과 대화할 때 가슴에 답답한 증상은 없는지 물어보자.돌연사를 일으키는 심장질환이 있는지 가늠할 수 있다. 가슴 가운데에 누르는 듯한 흉통이 있고 조이면 혈관이 좁아지는 협심증이다. 10분 거리를 걷는데도 어질하고 앞이 캄캄해져 쓰러질 것 같다고 호소하면 귓속의 평형기관 등이 망가진 노인 어지럼증의 가능성이 있다.

◆평소 자주 묻고 듣는 것이 효도

비뇨기 질환이 있는 노인은 삶의 질이 떨어진다. 하지만 부끄러워 자식들에게 말을 꺼내지 못한다. 아들은 아버지에게,딸은 어머니에게 불편한 곳은 없는지 묻는 지혜가 필요하다. 남성은 전립선이 커지거나 염증이 생기면 소변을 보기 힘들어진다. 여성은 자주 소변이 마려운 요실금(건강한 사람은 하루 평균 5~6회),잠자리에 든 뒤 서너 번씩 소변을 보러 일어나는 빈뇨 · 절박뇨가 생긴다. 부모님과 30~45㎝ 떨어진 가까운 거리에서 대화하는데도 말귀를 잘 알아듣지 못하면 난청이다. 난청이 있어도 입 모양을 보고 말귀를 알아들을 수 있다. 등 뒤에서도 말해 보자. 음성이 갑자기 커지고 전화통화가 힘들면 난청일 수 있다. 기침이 심하고 숨 쉴 때 쌕쌕 소리가 나면 폐의 산소 교환장치인 허파꽈리가 망가진 만성폐쇄성 폐질환의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부모님 건강에 대해 얻은 정보가 1회성에 그치면 의미 없다. '건강수첩'을 만들어 전화로 연락하거나 인사드릴 때마다 지속적으로 체크해야 질병 '파수꾼' 효과를 볼 수 있다. 키 · 체중 · 운동능력 · 시력 · 청력 등을 자주 여쭤보는 것이 스마트 시대의 '효도법'이 될 수도 있다.

◆도움말=최수연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순환기내과 교수,조수현 중앙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김동윤 서울척병원 대표원장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