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블랙 컨슈머'들의 횡포를 차단하고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조물책임법을 개정키로 했다. 제조물 결함을 입증할 수 있는 공신력 있는 제3기관 선정 등을 검토하고 있다. 가전제품 설치 과정에서 결함이 발생하면 제조사가 아닌 설치자에게 책임을 묻는 조항 도입도 고려 중이다.

법무부는 23일 서울 팔래스호텔에서 권재진 장관과 학계,재계,소비자단체 인사 등 4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조물책임법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토론회를 열었다.

권 장관은 인사말에서 "제조물책임법 개정은 적극적인 소비자 보호와 기업경영의 부담완화라는 두 이익을 균형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토론회 논의를 토대로 합리적이고 균형적인 개선방안을 도출하겠다"고 말했다. 소관부처인 법무부와 공정거래위원회는 공동으로 개정안을 마련해 내년 하반기에 국회에 제출한다는 방침이다.

토론회에 기업 측 대표로 나온 정진우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 이사와 소비자단체 대표로 참석한 강창경 한국소비자원 선임연구위원,학계 대표로 나온 박동진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각각 발표자로 나섰다.

정 이사는 "박선숙 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7월 발의한 제조물책임법 개정안에서는 제조물의 무결함을 제조업체가 규명토록 하고 있는데 이는 민사소송의 기본 원칙에 맞지 않다"며 "휴대폰을 전자레인지에 넣은 후 제품 결함이 있다며 1000만원을 받아낸 사례처럼 블랙 컨슈머들이 더욱 활개를 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제조물 문제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정부가 지정한 제3의 객관적이고 공신력 있는 기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 이사는 또 "무자격자가 가전제품을 설치할 때의 하자로 손해가 발생하면 배상 주체가 명확하지 않아 소비자들이 제조업체에 책임을 묻는 사례가 많다"며 "설치자에게 책임을 묻고 배상을 거부할 때는 백화점 등 판매자가 배상토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제조물 사고 후 상당 기간이 지난 뒤 소송하는 것에 대해서도 "경찰 조사를 다 마친 상태에서 소비자가 소송을 하면 제조사가 자체 조사 등 대응하기 힘들다"며 "양측이 동등한 입장에 설 수 있도록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강 위원과 박 교수는 현행 제조물책임법이 소비자 보호에 미흡하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강 위원은 "부동산이나 미가공 농림축수산물은 현재 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며 "가공과 미가공의 경계를 설정하기 힘들고 토지가 아닌 부동산은 동산의 집합이므로 제외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현행 법에서는 제조물 결함에 대해 '합리적인 대체설계를 채용했더라면' 등의 단서를 달고 있다"며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형태로 피해자 보호에 미흡해 개정돼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 블랙 컨슈머

구매한 제품에 대해 배상금 등을 목적으로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소비자.식료품 등에 일부러 이물질을 넣거나 고의로 제품을 훼손한 후 제품 결함이 있다며 거액의 배상금을 달라는 식이다. 기업들은 제품 이미지가 손상될 것을 염려해 울며 겨자 먹기로 요구를 들어주는 경우가 많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