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단독처리 역사 돌아보니…새벽에…무선 마이크로…기자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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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행처리,날치기,합법적 표결….
다수당에 의한 국회 의안의 단독 처리를 규정하는 용어는 다양하다. 각 정당의 입장에 따라 편의적으로 해석한 결과다. 우리 국회 역사에서 다수당이 주도한 기습 처리는 60년 가까이 되고 수법도 다양하다.
기습 처리의 뿌리는 195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승만 정권은 그해 1월 재선을 목적으로 대통령 직선제와 국회 양원제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부결됐다. 그러자 이 전 대통령은 버스에 타고 있던 야당 의원들을 통째로 연행한 뒤 구속시켰다. 이 전 대통령은 군대를 동원해 국회를 포위한 채 그해 7월 여당 의원들만 참석시켜 재투표를 통한 이른바 발췌개헌안을 처리했다. 공화당 의원들은 1969년 9월14일 새벽 2시30분 국회 제3별관(지금 서울시의회 자리)에 전등을 끈 채 몰래 모인 뒤 3선 개헌안을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1996년 12월 노동법 기습 처리는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은 제3자 개입 금지 등을 위해 노동법 개정을 추진했다. 야당의 반발로 법안 처리가 어렵자 여당 의원 155명은 25일 퇴근하는 척 의사당을 나선 후 팔래스호텔을 비롯한 서울 시내 호텔 4곳에 몸을 숨겼다. 다음날 새벽 4시쯤 이들은 관광버스를 타고 국회로 왔고 야당 의원들이 잠든 사이 노동법 등을 처리했다.
민정당은 1985년 12월 신민당이 본회의장을 밤새 점거하자 의원총회를 하겠다며 새벽 국회 146호실에서 소속 의원들만 모인 가운데 최영철 국회부의장 주도로 새해 예산안을 단독 처리했다.
1994년 12월엔 야당인 민주당 의원들이 황낙주 국회의장실을 막는 사이 이춘구 국회부의장이 본회의장 2층 기자석에 "실례합니다"라며 들어왔다. 이어 주머니에서 무선마이크를 꺼내 개의 선언과 함께 47개 의안을 전격 처리했다.
국민회의는 집권하자 야당 시절 당한 방식을 그대로 되갚았다. 1999년 1월 야당인 한나라당이 본회의장을 점거하자 김봉호 국회부의장은 의석 중간에서 국민회의 의원들의 호위 속에 무선마이크와 의사봉을 꺼내 들고 3분 만에 경제청문회 개최안 등 4개 안건을 기습처리했다. 2005년엔 열린우리당이 사학법개정안을 단독처리하면서 한나라당은 한 달 이상 장외투쟁을 벌였다.
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
다수당에 의한 국회 의안의 단독 처리를 규정하는 용어는 다양하다. 각 정당의 입장에 따라 편의적으로 해석한 결과다. 우리 국회 역사에서 다수당이 주도한 기습 처리는 60년 가까이 되고 수법도 다양하다.
기습 처리의 뿌리는 195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승만 정권은 그해 1월 재선을 목적으로 대통령 직선제와 국회 양원제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부결됐다. 그러자 이 전 대통령은 버스에 타고 있던 야당 의원들을 통째로 연행한 뒤 구속시켰다. 이 전 대통령은 군대를 동원해 국회를 포위한 채 그해 7월 여당 의원들만 참석시켜 재투표를 통한 이른바 발췌개헌안을 처리했다. 공화당 의원들은 1969년 9월14일 새벽 2시30분 국회 제3별관(지금 서울시의회 자리)에 전등을 끈 채 몰래 모인 뒤 3선 개헌안을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1996년 12월 노동법 기습 처리는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은 제3자 개입 금지 등을 위해 노동법 개정을 추진했다. 야당의 반발로 법안 처리가 어렵자 여당 의원 155명은 25일 퇴근하는 척 의사당을 나선 후 팔래스호텔을 비롯한 서울 시내 호텔 4곳에 몸을 숨겼다. 다음날 새벽 4시쯤 이들은 관광버스를 타고 국회로 왔고 야당 의원들이 잠든 사이 노동법 등을 처리했다.
민정당은 1985년 12월 신민당이 본회의장을 밤새 점거하자 의원총회를 하겠다며 새벽 국회 146호실에서 소속 의원들만 모인 가운데 최영철 국회부의장 주도로 새해 예산안을 단독 처리했다.
1994년 12월엔 야당인 민주당 의원들이 황낙주 국회의장실을 막는 사이 이춘구 국회부의장이 본회의장 2층 기자석에 "실례합니다"라며 들어왔다. 이어 주머니에서 무선마이크를 꺼내 개의 선언과 함께 47개 의안을 전격 처리했다.
국민회의는 집권하자 야당 시절 당한 방식을 그대로 되갚았다. 1999년 1월 야당인 한나라당이 본회의장을 점거하자 김봉호 국회부의장은 의석 중간에서 국민회의 의원들의 호위 속에 무선마이크와 의사봉을 꺼내 들고 3분 만에 경제청문회 개최안 등 4개 안건을 기습처리했다. 2005년엔 열린우리당이 사학법개정안을 단독처리하면서 한나라당은 한 달 이상 장외투쟁을 벌였다.
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