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단절이 원인…입시 스트레스 한계 넘어"

고등학교 3학년 우등생이 '전국 1등'에 대한 강요를 못 이겨 어머니를 살해하고 시신을 반년 넘게 집에 방치해 충격을 주고 있다.

이러한 패륜범죄가 잊을 만하면 터져나오는 것은 집착에 가까운 입시경쟁을 부추기는 학벌 중심사회와 이 때문에 대화마저 단절되는 비정상적인 가족관계가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4일 경찰에 붙잡힌 서울 모 고교 3학년 A(18)군은 줄곧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한 우등생이었다.

이번에 치른 수능시험에서도 서울의 웬만한 사립대에 합격할 수 있을 만큼 좋은 점수를 받았지만 '1등'만을 원하는 어머니를 만족시킨 적은 한번도 없었다.

성적이 마음에 안들면 밥을 주지 않거나 잠을 못자게 하는 어머니 때문에 A군은 중학교 때부터 성적표를 위조하는 게 버릇처럼 돼버렸다.

지난 3월 어머니를 살해한 직접적인 이유도 이튿날 학교를 방문할 예정이었던 어머니에게 성적표를 '전국 62등'으로 고쳐 보여준 모의고사의 진짜 성적이 들통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A군은 어머니의 시신을 집에 방치해놓고 친구들을 불러 라면을 끓여 먹을 정도로 평범하게 생활했지만 경찰에 붙잡히고서는 "어머니가 꿈에 나온다"며 눈물을 쏟았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청년이 잔혹한 수법을 써 인륜을 저버리는 사건은 과거에도 여러 번 있었다.

아직도 대표적인 패륜범죄로 기억되는 1994년 '한약상 부부 살인사건'은 미국 유학 중 도박으로 돈을 탕진한 박한상(당시 23세)씨가 유산을 노려 부모를 흉기로 잔혹하게 살해한 사건이었다.

2000년에는 명문대 휴학생 이모(당시 23세)씨가 부모를 토막살해하는 끔직한 일이 벌어졌다.

경찰에 붙잡힌 이씨는 "군 장교 출신인 아버지가 어렸을 적부터 떨어져 살며 무관심했고 '명문대를 가라, 못난놈'이라며 엄하게 교육을 시켜 불만을 품어오다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털어놨다.

2009년 10월 수원에서는 대학생이 '성적이 나쁘다'며 핀잔을 주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시신을 4개월 동안 집에 유기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학벌에 대한 과도한 집착, 성적을 둘러싼 부모 자식 간의 갈등과 소통 부재에서 이러한 패륜범죄의 원인을 찾고 있다.

최지영 나사렛대 학생상담센터 교수는 "학생 개인의 기질적 요인과 가정적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본다"며 "우리의 교육시스템은 이런 부분을 도외시하고 기계적 학업성취만을 요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은숙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회장은 "평소 눌려 있던 스트레스와 감정이 일순간에 폭발한 이유는 부모와의 관계 단절에서 비롯된 분노가 표출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하재근 '학벌없는 사회' 운영위원은 "2000년대 이후 입시경쟁이 극도로 심해졌고 청소년들이 겪고 있는 스트레스가 한계를 넘었을 때 이런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며 "사회 전반적으로 경쟁을 완화하고 아이들이 학벌을 넘어 정신적으로 안정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tel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