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순진한 진리
1990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고 뉴욕주 올버니에서 변호사로서 선서했다. 그때 어느 미국 법조인이 축하 인사말을 한 것이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자신이 30여년 동안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제일 보람 있었던 것은 돈을 많이 벌었다는 사실도 아니고 명예를 얻었다는 사실도 아니고 오로지 자기가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도운 것이라고 했다. 누가 남을 도와주기만 하려고 고생스러운 법률공부를 하고 변호사가 될까.

우리나라 사법시험에 합격해서 새로운 법조인이 되는 사람들에게 왜 법조인이 되려 하느냐고 물어 보면 그 대답은 대부분 동일하다. 판사 지망자는 올바르게 재판하고 억울한 사람을 올바른 판결로 구해주기 위해서이고,검사 지망자는 죄지은 사람을 철저히 수사해 엄벌하고 무고한 사람을 풀어줘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이고,변호사 지망자는 가난하고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을 변론해줘 이 사회를 보다 나은 사회로 만들기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그렇지만 내심을 들여다보면 안정된 경제생활,존중받는 사회적 지위,상사의 간섭을 덜 받는 전문가로서의 삶을 살고 싶은 게 법조인이 되고자 하는 이유라고 말하는 것이 정직한 대답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남을 위하는 마음으로 일하면 뭔가 확실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이론으로 알 수 있는 게 아니고 실제로 체험해 봐야 안다.

음식점 주인이 자기 식당에서 음식을 먹는 손님이 맛있게 먹었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원하면서 음식을 만들면 어려운 일도 재미있고 일할수록 힘이 날 것이다. 물건을 만드는 사람이 이 물건을 쓰는 사람이 편리함을 느끼고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바라면서 물건을 만들면 남다른 정성이 들어가지 않을 수 없고 힘든 일도 잘 견뎌낼 것이다. 서비스업을 하는 사람이 고객을 행복하게 해주려는 마음으로 일하면 누구보다도 더 고객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고 온갖 기발하고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것이다.

순진하고 단순하게 들리지만,실제로 그렇게 해보면 일하는 과정도 다르고 그 결과도 크게 다르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마음보다 남을 위해 일하는 마음이 앞서면 더욱 일할 의욕이 나고 힘이 솟는다. 거기에다 중요한 것은 그런 마음으로 지속적으로 일하면 상대방이 그것을 눈치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늘 상대방의 마음을 읽기 때문이다. 진심을 알고 고마움을 느끼는 상대방의 반응은 남을 위해 일하는 데 더욱 힘이 나게 하고 신이 나게 한다.

만일 돈을 위해 변호사가 밤낮으로 일한다면 참으로 불쌍한 인생일 것이다. 자기가 하는 일이 로펌의 동료,선후배 변호사들에게 도움이 되고,나를 필요로 하는 고객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주위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게 해준다는 사실에 기쁨과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면 일찌감치 변호사를 그만두는 게 좋을 것이다.

윤용석 < 법무법인 광장 대표변호사 ysy@leek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