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인류 경제사는 '빚의 역사'…최초의 화폐는 '신용'
결국 빚이 문제다. 2008년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개인의 은행빚에서 촉발됐다. 지난 7월의 미국 국가부도 소란도 연방정부 부채 한도 증액 여부에 관한 논란이었다.

그리스 등 유럽 각국이 재정 위기를 겪는 것 또한 갚기 힘들 정도로 많은 정부 부채 탓이다. 도대체 왜 이런 부채 위기가 끊이지 않고 반복될까.

예일대를 거쳐 런던대 골드스미스에 재직 중인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 교수가 《부채 그 첫 5000년》을 통해 이 물음에 답했다.

저자는 인류 경제사를 '부채의 역사'로 본다. 역사적으로 실물 화폐보다 부채가 먼저라는 주장이다. 경제학자들의 말 대로 물물교환에서 화폐가 생기고 신용거래가 정착된 게 아니라,'신용'이란 화폐가 먼저 생겼다는 것.그런 다음 화폐가 생겼고 이런저런 이유로 현금을 확보하지 못했을 때 사용한 것이 물물교환이었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인류초기의 부채는 공동체의 유대를 강화하는 힘이었다고 말한다. 신용이란 가상통화가 지배하는 시대에는 부채가 곧 사회적 약속으로 통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주변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신용화폐로 인한 문제가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들을 두고 있었다. 근동지역에서는 주기적인 부채탕감이 이뤄졌고,중세의 종교들은 이자를 받는 대출을 금지하는 등 대개는 채무자를 보호하는 쪽으로 움직였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인간의 모든 행위가 일대일 교환으로 규정되면서부터 부채가 사회를 파괴할 수 있는 위협으로 등장했다고 주장한다.

특히 현대에 들어서면서 채무자 보호와는 반대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현실을 우려한다. 미국의 후원 아래 창설된 국제통화기금(IMF)도 채무자가 아닌 채권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직이지 않느냐는 해석이다.

미국 달러와 재정적자에 대해서도 한마디한다. 미국 달러는 중앙은행(Fed)을 통해 순환되고 있는 정부 부채라는 것. Fed가 그냥 돈을 찍어 정부에 빌려줌으로써 부채를 돌리고 있는 것이란 설명이다. 다만 보통사람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 못하도록 복잡하게 시스템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시스템의 비밀은 재정적자가 완전히 사라지면 대재앙이 닥친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