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화가들의 춘하추동…묵향, 천리를 품다
겸재 정선(1676~1759)은 '진경산수' 화풍을 개척한 '조선의 화성(畵聖)'이다. 주역에 능통한 그는 암산절벽을 필법으로,토산수림은 묵법으로 처리해 산과 강,바위가 마주보게 하는 음양 대비의 화면을 즐겨 구사했다.

서울 견지동 동산방화랑(대표 박우홍)은 겨울 기획전으로 겸재를 비롯해 현재 심사정,창강 조속,연담 김명국,낙서 윤덕희,표암 강세황 등 조선 후기 화가 24명의 작품을 모은 '조선 후기 산수화-옛 그림에 담긴 봄 여름 가을 겨울'전을 오는 29일부터 내달 13일까지 연다.

조선시대 진경산수의 원류를 명쾌하게 보여주는 전시로 박우홍 대표의 부친인 박주환 창업주 때부터 동산방화랑과 인연을 맺어온 소장가들의 그림 중 겸재의 절정기 산수화 9점을 포함해 심사정,조속,이인문,김득신 등의 작품 1~5점씩 모두 50여점을 전시한다.

겸재의 '연강임술첩'에 실린 '우화등선(羽化登船)''웅연계람(熊淵纜擥)'을 비롯해 조속의 '추강(秋江)',유덕희의 '관월도',이인문의 사계절 그림 등 30여점은 일반에 처음 공개된다. 조선 후기 진경산수의 발전 과정,미술사적 의미까지 입체적으로 조명할 수 있는 기회다.

겸재의 대표작으로 눈길을 끄는 작품은 단연 '우화등선'과 '웅연계람'.이 작품은 시각적 재현을 넘어 학문과 예술의 이상적인 경지를 보여주며 관람객의 상상력을 압도한다. '연강임술첩'은 양천현령으로 재직한 겸재가 1742년 10월 보름에 연천현감 신주백,관찰사 홍경보와 함께 임진강 변에서 뱃놀이를 하며 그린 화첩이다. 모두 세 부를 그려 각각 한 부씩 소장했으나 현재 두 부만 전해진다. 임진강 뱃길 100리를 진경화풍으로 그려서인지 박진감이 넘치고 청명감과 신명이 느껴진다. 겸재 나이 65~70세 사이에 그린 이 작품은 '박연폭포''인왕제색도''금강전도'와 함께 그의 명작으로 꼽힌다.

새벽달이 떠 있는 산봉우리 풍경에 가을색의 자태가 그대로 드러난 '산월도' 역시 겸재가 1740~1750년께 그린 수작.새벽 풍경을 미점으로 둥글게 묘사한 산봉우리와 한껏 색조 화장을 한 단풍나무에서 겸재의 농익은 맛을 확인할 수 있다. 70세에 사계절 진경 10폭을 그린 '고사산수첩'의 일부 작품도 관람객을 반길 예정이다.

겸재, 관아재 조영석과 함께 조선 후기 사대부 출신 화가 '사인삼재(士人三齋)'로 불리는 심사정의 채색화도 등장한다. 그의 '심산운해'는 험준한 산들과 높은 봉우리,가파른 절벽,구름에 잠긴 골짜기를 단출한 점묘법(點描法) 형태로 묘사했다.

영모화조도(翎毛花鳥圖)에 능한 조속의 산수화도 놓칠 수 없다. 그의 '추강'은 늦가을 뱃길을 재촉하는 어부의 모습을 간결한 구도로 묘사해 특히 눈길을 끈다.

이인문(1745~1824)의 산수화 5점도 나온다. 두 선비가 마주앉아 봄꽃을 감상하는 '상화',시골의 초여름 풍경을 그린 '초하',늦가을 풍경인 '만추'와 들판의 눈을 묘사한 '설경' 등은 수묵의 구사나 필력이 뛰어나 화면에 생기가 돈다.

전시를 기획한 이태호 명지대 교수는 "조선시대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덕목과 학문적 역량을 갖춘 선비 화가들은 그림을 통해 당시의 문화적인 역량을 총체적으로 반영했다"며 "진경산수화를 통해 시대적인 상황을 읽을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02)733-5877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