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아버지의 숲'이 준 선물은 자연愛ㆍ탐구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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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오래된 숲 / 베른트 하인리히 지음 / 서소울 옮김 / 이순 / 608쪽 / 2만5000원
'맵시벌' 연구에 미친 벌목공…아들은 이해 못하고 거리 둬
세계적 생물학자 된 후에야 아버지 삶 재구성하며 화해
'맵시벌' 연구에 미친 벌목공…아들은 이해 못하고 거리 둬
세계적 생물학자 된 후에야 아버지 삶 재구성하며 화해
"아버지에게 맵시벌은 종교이다. 그 성지는 산과 들이고,이곳으로 통하는 길목에 생물분류학이 있었다. 그 길에 동무는 별로 없었다. 육체적이고 금전적이며 지적인 난관의 연속이었다. 마침내 그 길 끝에 이르렀을 때,바라던 월계관은 없었다. 너무도 먼 길을 너무도 오래 달려와서 결승점에 도착했을 때는 이 달리기를 애초에 왜 시작했는지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
미국의 저명한 생물학자인 베른트 하인리히(71)는 기인으로 통한다. 그는 미국 북동부 메인주 숲속에 들어가 통나무집을 짓고 살면서 동물들을 관찰,기록하고 연구하는 일로 시간을 보낸다.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교수직을 던지고 숲으로 들어간 그를 버몬트주립대에서 초빙했을 때 그가 내건 조건은 학교 강의 외에 숲속 생활을 할 시간을 최대한 빼앗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는 《뒤영벌의 경제학》을 비롯 정확하고 섬세한 관찰과 예리한 통찰을 바탕으로 자연과 생명의 신비를 파헤친 많은 과학 명저들을 저술했다.
《아버지의 오래된 숲》은 '현대의 시튼'이라 불리는 저자가 아버지 게르트 하인리히를 탐구하고 기록한 책이다. 생물학자가 아닌 아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아버지다. 아버지가 남긴 일기와 편지,메모,지인들의 증언과 자신의 기억을 바탕으로 아버지의 삶을 재구성했다. 20세기 초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폴란드에서 독일로,독일에서 미국으로 건너오기까지 파란만장한 가족사와 함께 근현대 생물학의 100년 발자취를 보여준다.
베른트 하인리히의 아버지는 평생을 맵시벌 연구에 바친 열정적인 곤충 수집가였다. 세계대전 와중에도 틈틈이 맵시벌 채집을 할 만큼 아버지의 꿈은 지극했다. 생계는 주로 박물관이나 학자들의 부탁을 받고 동물 채집 원정을 하는 것으로 해결했다.
곤충과 새 등에 대한 그의 박물학적 지식은 당대 그 누구보다 깊고 풍부했으나,세상은 대학 졸업장과 학위가 없는 그를 학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종전 이후 유럽 경제가 어려워지자 미국으로 이민을 갔지만,새로운 땅에서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먹고살기 위해 아내와 함께 벌목 노동을 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 손에 이끌려 맵시벌 채집을 나가곤 했던 아들은 사춘기를 지나 어른이 되면서 점점 아버지와 거리를 두려 애썼다. 아버지는 자식들 대학에 보낼 돈 한 푼 없으면서도,막노동을 해서 번 돈을 맵시벌 연구에 쏟아붓는 고집불통이었다. 그가 새로이 발견하고 이름을 지어준 맵시벌은 무려 1500여 종에 달했다. 하지만 그토록 관심과 열정을 바쳐 연구해도 대부분의 사람에게 맵시벌은 낯선 생물체에 불과했다.
아들은 이런 아버지가 답답하고 이해되지 않았다. 아버지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도 쳤다. 하지만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아버지였다. 아버지와 함께 숲에서 자연을 느끼고 그 경이로움에 눈을 떴던 아들은 결국 대학에서 생물학을 연구했다.
저자는 아버지가 살아계시는 동안에는 완전한 화해를 이루지 못했다. 시류에 밀려 주류 무대의 뒤안길로 쓸쓸하게 사라지는 아버지를 보며 일말의 연민을 느끼지만 그 삶을 적극적으로 껴안지는 못했던 것.저자에게 아버지는 구시대와 낡은 것의 표상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버지에 관한 책을 쓰기 위해 아버지의 편지와 일기,옛 글을 읽으면서 아들은 비로소 아버지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게 된다. 저자는 "광기 어린 시대에 미혹되지 않고 고비고비를 헤치고 나온 아버지의 80여년 인생을 더듬으며 새삼 감탄과 경의를 금치 못했다"고 말한다. 아버지의 꿈과 열망,고뇌의 흔적을 따라가며 쓴 아버지와 가족의 이야기가 잔잔한 감동을 준다.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
미국의 저명한 생물학자인 베른트 하인리히(71)는 기인으로 통한다. 그는 미국 북동부 메인주 숲속에 들어가 통나무집을 짓고 살면서 동물들을 관찰,기록하고 연구하는 일로 시간을 보낸다.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교수직을 던지고 숲으로 들어간 그를 버몬트주립대에서 초빙했을 때 그가 내건 조건은 학교 강의 외에 숲속 생활을 할 시간을 최대한 빼앗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는 《뒤영벌의 경제학》을 비롯 정확하고 섬세한 관찰과 예리한 통찰을 바탕으로 자연과 생명의 신비를 파헤친 많은 과학 명저들을 저술했다.
《아버지의 오래된 숲》은 '현대의 시튼'이라 불리는 저자가 아버지 게르트 하인리히를 탐구하고 기록한 책이다. 생물학자가 아닌 아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아버지다. 아버지가 남긴 일기와 편지,메모,지인들의 증언과 자신의 기억을 바탕으로 아버지의 삶을 재구성했다. 20세기 초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폴란드에서 독일로,독일에서 미국으로 건너오기까지 파란만장한 가족사와 함께 근현대 생물학의 100년 발자취를 보여준다.
베른트 하인리히의 아버지는 평생을 맵시벌 연구에 바친 열정적인 곤충 수집가였다. 세계대전 와중에도 틈틈이 맵시벌 채집을 할 만큼 아버지의 꿈은 지극했다. 생계는 주로 박물관이나 학자들의 부탁을 받고 동물 채집 원정을 하는 것으로 해결했다.
곤충과 새 등에 대한 그의 박물학적 지식은 당대 그 누구보다 깊고 풍부했으나,세상은 대학 졸업장과 학위가 없는 그를 학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종전 이후 유럽 경제가 어려워지자 미국으로 이민을 갔지만,새로운 땅에서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먹고살기 위해 아내와 함께 벌목 노동을 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 손에 이끌려 맵시벌 채집을 나가곤 했던 아들은 사춘기를 지나 어른이 되면서 점점 아버지와 거리를 두려 애썼다. 아버지는 자식들 대학에 보낼 돈 한 푼 없으면서도,막노동을 해서 번 돈을 맵시벌 연구에 쏟아붓는 고집불통이었다. 그가 새로이 발견하고 이름을 지어준 맵시벌은 무려 1500여 종에 달했다. 하지만 그토록 관심과 열정을 바쳐 연구해도 대부분의 사람에게 맵시벌은 낯선 생물체에 불과했다.
아들은 이런 아버지가 답답하고 이해되지 않았다. 아버지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도 쳤다. 하지만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아버지였다. 아버지와 함께 숲에서 자연을 느끼고 그 경이로움에 눈을 떴던 아들은 결국 대학에서 생물학을 연구했다.
저자는 아버지가 살아계시는 동안에는 완전한 화해를 이루지 못했다. 시류에 밀려 주류 무대의 뒤안길로 쓸쓸하게 사라지는 아버지를 보며 일말의 연민을 느끼지만 그 삶을 적극적으로 껴안지는 못했던 것.저자에게 아버지는 구시대와 낡은 것의 표상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버지에 관한 책을 쓰기 위해 아버지의 편지와 일기,옛 글을 읽으면서 아들은 비로소 아버지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게 된다. 저자는 "광기 어린 시대에 미혹되지 않고 고비고비를 헤치고 나온 아버지의 80여년 인생을 더듬으며 새삼 감탄과 경의를 금치 못했다"고 말한다. 아버지의 꿈과 열망,고뇌의 흔적을 따라가며 쓴 아버지와 가족의 이야기가 잔잔한 감동을 준다.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