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조경수
'소나무 5주,감나무 2주,모과나무 2주,영산홍 200주,맥문동 2000주.' 단독주택에 살던 시절 집 수리비 견적과 함께 받은 조경수 견적을 처음 봤을 땐 엄청난 줄 알았다. 2000주라니.맥문동이 풀인 줄 알았을 때의 황당함이란.무식의 소치였지만 그런 사람이 어디 나뿐이랴.

조경의 힘은 놀랍다. 텅빈 땅에 나무 몇 그루만 심어놔도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분양가 자율화 이후 아파트 고급화 경쟁의 중심에 조경이 자리한 것도 그런 까닭이다. 예전엔 보통 다루기 쉽고 관리하기 좋은 2~3년생 묘목을 심었지만,2000년대 들어선 수령 50년 이상 된 소나무 등 비싼 조경수 경쟁이 붙었다.

조경에만 100억원 넘게 들었다는 아파트가 나왔을 정도다. 문제는 나무 값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는 점. 자연히 조경수는 부르는 게 값이 되기 일쑤다. 그러다 보니 조경공사가 비자금 조성에 이용된다는 의혹도 나온다. 골프장의 경우 조경수목 교체 등에 과다비용을 계정,공사비를 부풀려 비자금을 조성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게 그것이다.

실제 감사원이 지난해 4월 지자체장과 지방 공기업 사장 등 32명을 적발해 검찰에 수사 의뢰한 내용을 보면 건설사를 경영하던 군수가 대표자 명의를 친구로 변경한 채 대주주로 있으면서 관내 조경 · 문화재 공사를 독점하도록 견적서 제출 자격을 제한하도록 지시했다는 것도 있다,

더이상 그대로 두고 볼 수 없다고 봤을까. 국민권익위원회가 조경수 가격을 제대로 관리하도록 국토해양부와 조달청 산림청 등 관계기관에 권고했다는 소식이다. 조사 결과 조경수에 대한 원가계산이 제대로 안 돼 해마다 값이 오르고 예산낭비와 물가상승을 초래했다는 것.

지난해 공공 부문 조경수 공사 비용만 1조5689억원에 달했는데 조경수의 생산과 유통 과정에 불법과 비리 소지가 많은 건 물론 행정직 공무원이 준공 검사하면서 수목이 죽는 등 사후관리가 부실한 경우도 수두룩했다는 것이다.

아파트 단지 안 조경수도 2~3년 뒤면 말라 죽는 수가 흔하다. 권고안엔 조경수 가격 결정 심의위원회 구성,합리적 원가 계산,고가 조경수의 원산지 표시,유통이력관리제 도입,유통정보시스템 구축 등이 담겼다. 중요한 건 제도보다 운영이다. 세금과 공사비 낭비를 막는 건 물론 멀쩡해 보이던 나무가 죽는 일도 없어지기를 기대한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