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 남은 달력…'다꾸族' 마음은 벌써 2012년
‘파르마의 수도원’을 쓴 프랑스의 소설가 스탕달은 1817년 이탈리아 피렌체의 산타크로체 성당을 찾았다. 이곳에서 구이도 레니가 그린 한 소녀의 초상인 ‘베아트리체 첸치’라는 작품을 보게 된다. 이 작품을 감상하던 그는 심장 박동수가 빨라지고 무릎에 힘이 풀리면서 황홀경에 빠지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뛰어난 예술 작품을 본 뒤 의식 혼란, 어지러움증, 환각 등을 겪는 ‘스탕달 증후군(Stendhal syndrome)’은 여기서 나온 말이다.

스탕달은 곧장 숙소로 돌아가 이 감상을 일기에 적어놓았고 훗날 이 기록을 바탕으로 ‘나폴리와 피렌체:밀라노에서 레기오까지의 여행’이란 책을 썼다. 그날 있었던 일을 기록하는 스탕달의 꼼꼼함(?)이 없었더라면 전해내려올 수 없던 이야기다.

◆‘100%의 다이어리’ 고르기

날씨가 추워지면서 달력의 대부분이 찢겨져 나가는 매년 이맘때가 되면 시내 대부분의 서점과 문구점 매대에는 다양한 종류의 이듬해 다이어리가 놓여지기 마련이다. 다이어리의 기능은 사실 간단하다. 스탕달처럼 하루하루 있었던 일을 적거나 각종 스케줄을 기록해 일정을 관리하는 용도다.

하지만 수많은 다이어리를 앞에 두고 선택을 하기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일단 한번 쓰기 시작하면 그해가 끝날 때까지 다른 다이어리로 바꾸기 어려운 까닭이다.

천편일률적이던 다이어리의 생김새는 점차 다양하게 바뀌고 있다. 연말에 서점을 찾으면 수천 종류의 다이어리들이 매대를 가득 채우고 있다. 워낙 선택의 폭이 넓어진 탓에 마음에 드는 다이어리를 찾는 일도 예전보다 어려워졌다.

과거에 기자가 썼던 글을 찾다 보니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5년 전인 2006년 11월26일에 ‘100%의 다이어리를 고르는 일에 관하여’란 제목으로 노트에 끄적거린 글이 나왔다. (이때는 기자가 아니었다.) 메모에 불과한 짧은 글이지만 이런 글을 썼던 것으로 봐선 어떤 다이어리를 살 것인가를 두고 상당한 고민을 했던 모양이다.

글에서는 총 7가지의 조건을 들고 있었다. 첫째, 항상 들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가급적 작아야 한다.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정도면 충분하다. 둘째, 링바인더가 아닌 제본식이어야 한다. 셋째, 다른 속지는 필요없이 주간 일정만 기록할 수 있으면 된다. 넷째, 다이어리가 벌어지지 않도록 해주는 고무밴드 따위의 보조물이 있어야 한다. 다섯째, 하드커버보다는 소프트커버가 낫다. 여섯째, 전년도 12월부터 사용 가능해야 한다. 일곱째, 검은색 커버에 단순한 디자인이어야 한다.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이어서 사람에 따라 동의를 할 수도, 반대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무엇이 됐든 저마다 가장 마음에 드는 다이어리를 고르는 기준은 몇 가지씩 갖고 있을 것이다.

◆대체 불가능한 종이 다이어리만의 영역도

최근 몇 년 동안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과 모바일 디바이스가 확산되면서 종이 다이어리의 역할 가운데 상당 부분이 모바일 기기로 넘어갔다. 당장 기자만 해도 지난해부터 모든 일정 관리는 스마트폰으로 하고 있다. 항상 손에 들고 있는 물건이 스마트폰이란 이유에서다. 구글 캘린더와 실시간으로 연동되는 일정 관리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을 이용해 컴퓨터와 스마트폰 양쪽에서 편하게 일정 관리를 할 수 있다. 굳이 따로 다이어리를 들고 다닐 필요가 없어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종이로 된 다이어리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최근 몇 년 동안 자기계발서 바람이 불면서 체계적인 시간 관리를 도와준다는 고급형 다이어리가 인기를 끌었다. 일부 명품 업체들은 이런 다이어리의 커버를 제작하기도 했다. 질좋은 가죽으로 만든 다이어리는 용도를 넘어 소비자들의 ‘소유욕’을 자극하기도 한다.

학생들 사이에선 ‘다꾸(다이어리 꾸미기의 줄임말)’란 말도 유행이다. 다양한 색상의 펜과 스티커, 오려낸 잡지 사진 등을 이용해 자기만의 다이어리를 만들기도 한다. 디지털 기기로는 대체 불가능한 영역이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이 같은 영역이 남아 있는 한 매년 12월마다 고민은 계속될 것 같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