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사설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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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냉철한 판단력과 직관,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범죄 현장을 누비는 탐정은 상상력을 한껏 자극한다. 타이거 우즈의 섹스 파트너 중 한 명이었던 레이철 우치텔도 올봄 탐정으로 변신했다. 로스앤젤레스 DGA탐정아카데미에서 총기훈련, 미행, 실종자 수색, 은닉재산 조사 등의 과정을 수료한 후 자격증을 따냈단다. 전문분야가 불륜 배우자 수사라니 전공을 제대로 찾은 셈인가. ‘펠리컨 브리프’ ‘타임 투 킬’ ‘의뢰인’ 등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 존 그리샴은 자격증 없이 탐정 노릇을 하다 망신을 당한 적이 있다. 아들이 다니는 사립학교의 야구코치 부인에게 남편의 부정을 알리는 익명의 편지가 배달되자 코치와 함께 범인을 찾아내던 중 극비서류를 빼낸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사설탐정은 산업스파이 조사, 행방불명자나 가출자 찾기, 불륜증거 수집 같은 분야에서 주로 활약한다. 미국에선 1998년 르윈스키 사건 때 특별검사가 탐정을 고용했을 정도로 일반화됐다. 유럽 주요 국가와 일본도 사설탐정을 인정한다. 우리나라에선 아직 불법이라 흥신소와 심부름센터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외국 사설탐정도 국내에 들어와 영업중이다.
사설탐정을 허용하는 경비업법 개정안이 얼마전 국회 행안위 법안심사 소위를 통과했다. 검찰 경찰 등 국가수사기관을 대신해 민간이 각종 조사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법조계와 경찰의 물밑 다툼이 변수다. 퇴직 후 재취업 기회가 늘어나게 될 경찰은 찬성하는 반면 변호사 업무를 일부 잠식당하게 될 법조계에선 반대한다. 판·검사와 변호사 출신이 많은 법사위를 통과하느냐가 관건이다.
자질이 부족한 탐정을 양산하거나 사생활 침해, 증거물 불법 수집 등 편법이 횡행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한 해 발생하는 사기사건 20여만건의 기소율은 20%에 불과하다. 산업스파이 사건과 실종자 수도 해마다 늘어난다. 수사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게 주원인이다. 그 빈 틈을 잘 메울 수만 있다면 사설탐정 도입을 늦출 이유가 없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