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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규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가득한 저녁 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눈 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몇 송이 눈.
올해 구상문학상 대상을 받은 황동규 시인의 절창(絶唱) 중 한 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난 후의 애달픈 마음을 담은 이별시이지만, 시인이 고백한 대로 젊은날의 ‘즐거운 편지’와 함께 애틋한 사랑을 노래한 연애시이기도 합니다. ‘어제를 동여맨 편지’가 온 것으로 보아 ‘그대’도 아직 사랑을 잊지 못하고 있는가 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대를 따르던 길’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길이 다 없어지고 ‘우리와 놀아 주던 돌들’도 ‘얼굴을 가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랑한다’는 말마저 ‘깨어진 금’처럼 추운 하늘에 갇혀 있고, 여린 희망 또한 ‘성긴 눈’으로 ‘한없이 떠다니는’ 모습이어서 우리를 안타깝게 합니다. 이렇게 애잔한 심정을 집약적으로 표현한 명사형 종결어미가 더욱 길고 강한 여운을 남깁니다.
고두현 문화부장·시인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