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ONG KOREA] 돼지 췌도, 원숭이 이식 성공…당뇨 완치 가능성 열었지만 '10년 임상' 버틸 장기 지원을
[STRONG KOREA] 돼지 췌도, 원숭이 이식 성공…당뇨 완치 가능성 열었지만 '10년 임상' 버틸 장기 지원을
최근 한국 면역학계에 큰 사건이 있었다. 박성회 서울대 의대 교수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돼지 췌도를 영장류(원숭이)에 이식해 6개월 이상 생존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수많은 당뇨 환자들에게 한줄기 햇빛이 된 이 사건은 당뇨 치료 신약이 개발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국내외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기술적 한계가 많다. 관련 법 제도도 그동안 전무했다.

신약개발이 최종 목적지인 의료바이오 연구·개발(R&D)은 안갯속을 걷는 것과 같다. 연구진이 십수년간 간신히 기술을 개발해도 최소 5~10년 걸리는 임상절차를 통과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글로벌 수준의 제약사가 국내에서 한 곳도 없는 이유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박 교수의 성과가 나오고 나서야 부랴부랴 이종장기이식 제도화추진 태스크포스를 만들고 관련 법률 및 임상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고 지난 11일 발표했다.

◆국내 처음으로 당뇨 완치 가능성 제시

박 교수의 연구성과는 자체 개발한 항원특이적 면역억제제(MD-3)와 기존 보조억제제(Anti-CD 154, 라파마이신)를 써서 돼지 췌도를 원숭이 간에 이식했을 때 면역거부반응을 없앤 것으로 요약된다. 박 교수는 “이종 췌도 이식 시 반응하는 특이적 면역 체계를 무력화시켜 당뇨 완치의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라며 “그러나 앞으로 많은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생물은 세균뿐 아니라 다른 생물의 장기 등이 들어오기만 하면 면역시스템(항원-항체 반응)을 작동시켜 격렬하게 저항한다. 당연히 돼지 췌도(항원)가 들어오면 심한 거부반응이 일어난다. 만약 A라는 항원이 들어오면 체내 파수꾼인 수지상세포가 숙성화되면서 오직 A에만 대항하는 특수 항체(B)를 만들어 A를 죽이라고 방어체계를 가동한다. 이를 ‘항원 특이적 면역반응’이라고 한다. 그런데 항체 B가 A에 잘 달라붙기 위해서는 중간에서 이를 붙여주는 매개물질이 필요하다. 이 물질을 차단해 면역반응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 항체 신약의 기본 개념이다.

박 교수는 돼지 췌도가 들어올 때 작동하는 항원항체 매개분자 ‘ICAM-1’에 MD-3 를 붙이고, 보조억제제 2가지를 써 수지상세포를 무력화시키는 데 성공하고 이를 논문으로 입증했다. 박 교수는 이를 “수지상 세포를 ‘덜 떨어지게’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기술에 따라 돼지 췌도를 받고도 각각 7개월, 4개월, 2개월, 1개월 동안 안 죽고 생존한 원숭이 4마리가 서울대병원 내에서 관리되고 있다.

◆외곬 의료연구인들에게 장기 지원을

인터뷰 내내 박 교수는 제자(연구원)로부터 원숭이 상태를 휴대폰 문자를 통해 실시간 보고받았다. ××원숭이 ×시×분 현재 이상없습니다.’ ‘××원숭이가 ×시×분 ××상태를 보여 ××처리했습니다.’ 박 교수는 “원숭이가 계속 생존한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임상에 진입할 수 있어 관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인체란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아 효능이 전임상에서 검증됐다고 하더라도 임상과정에 언제 어디서 부작용이 발생할지 모른다. 박 교수 측은 7개월 된 원숭이는 면역억제제를 3개월 전부터 모두 중단했음에도 건강히 생존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언제 혈당수치가 급변할지, 면역억제제 투여 중단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실제로 ICAM-1 타깃 항체신약은 해외에서 임상에 들어갔다 환자가 뇌에 심각한 손상을 입어 사망하는 바람에 학계에서 폐기된 바 있다. 박 교수가 더욱 조심스러운 이유다. CD-154 타깃 항체신약도 과거 해외에서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지만 결국 임상에서 환자에게 혈전이 생기는 바람에 폐기됐었다. 또 앞서 돼지췌도 영장류 이식시험을 진행한 미국 이스라엘 벨기에 등 6개 연구그룹은 CD-154 항체신약을 썼을 때 생존기간이 300~400일을 모두 못 넘겼다고 보고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의료계 일각에서는 “박 교수의 처방법은 사람에게는 적용하기 어렵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박 교수는 이를 극복하는 핵심 기술이 있지만, 함께 연구를 진행 중인 기업과 특허를 낼 기술이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불가능하다고 양해를 구했다. 박 교수는 “남은 인생을 이 연구에 모두 걸고 싶다”며 “한 가지 주제에 몰두하는 의료연구진의 성과가 쉽게 나오지 않는 만큼 국가와 사회가 장기적으로 지원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