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우리 중 하나인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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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 때 만난 다문화가정 母子…더이상 이방인 아닌 '너와 나'
김용환 < 한국수출입은행장 yong1148@koreaexim.go.kr >
김용환 < 한국수출입은행장 yong1148@koreaexim.go.kr >
수확을 앞둔 벼가 가을 햇살을 배불리 먹고 황금빛을 토해내던 지난달 중순께 필자는 봉사활동차 직원들과 함께 은행과 자매결연을 맺은 마을이 있는 강원도 홍천을 다녀왔다. 시원스레 뚫린 경춘고속도로 덕분에 채 2시간이 걸리지 않아 도착한 성수리 마을. 그나마 읍내로 통하는 터널이 뚫려 있어 그렇지 예전에는 깡촌 소리 좀 들었음직한 아담하고 소박한 고향의 모습 그대로였다.
동네 주민들이 정성스레 차려준 시골 점심밥상을 마주 대한 우리 일행은 서울 어느 고급 한정식집이 이보다 맛있겠냐는 듯이 그릇을 싹싹 비웠다. 밥값은 제대로 하자 싶어 밀짚모자를 푹 눌러쓴 채 인근 논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중 어느 집 담벼락 너머로 마당에서 놀고 있던 모자(母子)가 눈에 들어왔다. 일곱 살쯤 돼 보이는 아이는 조용한 마을에 모처럼 들리는 떠들썩한 사람 소리가 정겨웠던지 대문 앞에 서 있는 필자에게 쪼르르 달려와 그동안 갈고닦은 듯한 90도 인사를 건넸다. 시선을 마당 한가운데로 돌리자, 아이의 엄마가 한눈에도 동남아쪽 어느 더운 나라에서 건너온 걸 알 수 있었다. 이 집은 다름 아닌 다문화가정이었던 것.
수인사를 나눴으니 안부라도 묻자 싶어 “한국 살기 괜찮죠? 뭐 불편한 건 없나요?”했더니, “네, 좋아요. 간혹 베트남 음식이 먹고 싶은 것만 빼고요”라는 유창한 우리말이 돌아왔다.
현재 우리나라엔 결혼 이민자와 혼인 귀화자를 포함해 다문화가정을 이룬 분들이 21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체류 외국인만 하더라도 130만명에 육박한다 하니 더 이상 ‘단일민족 단일혈통’을 계속 고집한다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라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조선 말기에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들의 눈에 이미 우리가 다민족으로 비쳐진 기록도 발견할 수 있다. 영국인 화가 랜도어(A.H. Savage Landor)는 1895년 ‘Corea or Cho-sen’이란 책에서 “아시아에 있는 거의 모든 인종의 표본이 그 조그만 반도에 정착한 듯하다”고 말했다.
다문화가정이란 용어도 ‘국제결혼가정’이나 ‘혼혈아’라는 다소 인종차별적인 정서를 없애고자 만들었지만, 왠지 우리의 일반가정과 선을 가르는 또 다른 이분법적 접근이 아닐까라는 우려도 드는 게 사실이다. 이젠 다문화가정을 더 이상 이방인 취급해선 안 된다. 그들은 그냥 우리들 중 하나일 뿐이다. ‘방가방가’라는 블랙코미디영화에서 한국 청년이 일자리를 얻기 위해 거꾸로 동남아인인 양 행동해도 아무도 몰랐던 것처럼 말이다.
봉사활동을 모두 마치고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 영화의 잔상이 왜 계속 떠올랐는지 모를 일이다.
김용환 < 한국수출입은행장 yong1148@koreaexim.go.kr >
동네 주민들이 정성스레 차려준 시골 점심밥상을 마주 대한 우리 일행은 서울 어느 고급 한정식집이 이보다 맛있겠냐는 듯이 그릇을 싹싹 비웠다. 밥값은 제대로 하자 싶어 밀짚모자를 푹 눌러쓴 채 인근 논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중 어느 집 담벼락 너머로 마당에서 놀고 있던 모자(母子)가 눈에 들어왔다. 일곱 살쯤 돼 보이는 아이는 조용한 마을에 모처럼 들리는 떠들썩한 사람 소리가 정겨웠던지 대문 앞에 서 있는 필자에게 쪼르르 달려와 그동안 갈고닦은 듯한 90도 인사를 건넸다. 시선을 마당 한가운데로 돌리자, 아이의 엄마가 한눈에도 동남아쪽 어느 더운 나라에서 건너온 걸 알 수 있었다. 이 집은 다름 아닌 다문화가정이었던 것.
수인사를 나눴으니 안부라도 묻자 싶어 “한국 살기 괜찮죠? 뭐 불편한 건 없나요?”했더니, “네, 좋아요. 간혹 베트남 음식이 먹고 싶은 것만 빼고요”라는 유창한 우리말이 돌아왔다.
현재 우리나라엔 결혼 이민자와 혼인 귀화자를 포함해 다문화가정을 이룬 분들이 21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체류 외국인만 하더라도 130만명에 육박한다 하니 더 이상 ‘단일민족 단일혈통’을 계속 고집한다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라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조선 말기에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들의 눈에 이미 우리가 다민족으로 비쳐진 기록도 발견할 수 있다. 영국인 화가 랜도어(A.H. Savage Landor)는 1895년 ‘Corea or Cho-sen’이란 책에서 “아시아에 있는 거의 모든 인종의 표본이 그 조그만 반도에 정착한 듯하다”고 말했다.
다문화가정이란 용어도 ‘국제결혼가정’이나 ‘혼혈아’라는 다소 인종차별적인 정서를 없애고자 만들었지만, 왠지 우리의 일반가정과 선을 가르는 또 다른 이분법적 접근이 아닐까라는 우려도 드는 게 사실이다. 이젠 다문화가정을 더 이상 이방인 취급해선 안 된다. 그들은 그냥 우리들 중 하나일 뿐이다. ‘방가방가’라는 블랙코미디영화에서 한국 청년이 일자리를 얻기 위해 거꾸로 동남아인인 양 행동해도 아무도 몰랐던 것처럼 말이다.
봉사활동을 모두 마치고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 영화의 잔상이 왜 계속 떠올랐는지 모를 일이다.
김용환 < 한국수출입은행장 yong1148@koreaexim.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