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남 대신증권 사장(사진)은 28일 이 말만 되풀이했다. 무죄선고를 받았으니 할말이 많을 법도 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무죄선고를 받은 직후 전화통화에서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다. 좀 쉬었으면 한다. 이해해 달라”고 오히려 부탁했다. 목소리에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
노 사장이 주식워런트증권(ELW) 부당거래 혐의로 기소된 것은 지난 6월23일. 이날까지 정확히 159일 동안 그는 ‘죄인 아닌 죄인’으로 살았다. 말수도 적어졌다. 외부 접촉도 최대한 자제했다.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살도 빠졌다.
노 사장은 지난 10월 중순 외국 출장길에 폭음을 했다. 비즈니스를 마치고 직원들과 저녁을 먹는 자리였다. 평소 같으면 한두 잔 하며 분위기나 잡는 정도였다. 그날은 아니었다. 직원들이 부축할 정도로 취했다. 한 직원은 “검찰 기소 이후 술을 입에도 대지 않던 분이 검찰 조사가 마무리되자 술 몇 잔에 취한 것 같다”고 말했다.
노 사장의 가슴앓이는 지난 4일 검찰로부터 2년6월 실형을 구형받으면서 더욱 심해졌다. 언론에 크게 보도되다보니 주위에서는 범법자로 여기는 듯한 시선도 보내왔다. 어떤 사람은 “아니 이렇게 돌아다녀도 되느냐”는 인사를 건네오기도 했다.
그는 얼마 전 사석에서 “경찰서 근처에는 가본 적도 없는 사람이 검찰 조사를 받고 법정에 나와 재판을 받다보니 말할 수 없는 회한이 몰려오곤 했다”고 말했다. “사실 최고경영자가 ELW 구조를 어떻게 알겠느냐”고 토로하기도 했다. “정말 충실하게 검찰 조사와 공판을 받았으며 이 과정에서 ELW 박사가 됐다”며 허탈한 웃음을 짓기도 했다.
노 사장의 혐의가 특별히 무거워서 가장 먼저 선고를 받은 건 아니다. 오히려 ELW 관련 서류에 결재도 하지 않는 등 혐의가 상대적으로 가볍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담당 재판부가 집중심리를 하다보니 가장 빨리 공판이 진행돼 주목을 받게 됐다. 이 과정에서 같은 혐의로 기소된 다른 증권사 사장들로부터 “업계를 대표해 정말 고생하신다”는 인사를 받기도 했다.
“한 말씀만 더 해 달라”는 부탁에 노 사장은 “변호인단과 황건호 금융투자협회장을 비롯한 관계자분께 정말 감사드린다”는 교과서적인 답변을 했다. 기소부터 무죄선고까지 159일간의 가슴앓이가 쉽게 가실 것 같지 않았다.
안상미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