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봇대'는 살아있다] 공장 하나 짓는데 법령만 40~50개…인허가 대행사도 "헷갈려"
경규명 삼창측량설계기술공사 대표는 “워낙 인허가 관련 법규가 복잡하고 어려워 인허가 업무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를 끼지 않으면 공장설립은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이 일로 먹고사는 우리도 헷갈릴 때가 많다”고 했다.

한국경제신문이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함께 경기 여주, 이천 일원에 개별입지 공장을 설립하기 위한 인허가 과정을 경 대표를 통해 시뮬레이션해 본 결과, 사전조사부터 공장 준공까지 핵심 절차만 최소 12단계를 거쳐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다 지방자치단체 내부에서 이뤄지는 폐기물 처리, 하수처리시설 설치, 매장문화재 관리 등 10여개 협의 사항까지 포함하면 20~30개가 넘는 미로를 통과해야 비로소 공장을 세울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는 공장설립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고 있다지만, 개략적 인허가 흐름도(그래픽 참조)에 나타난 항목부터가 복잡한 게 사실이다.

◆40~50개 법령의 그물망을 넘어라

['전봇대'는 살아있다] 공장 하나 짓는데 법령만 40~50개…인허가 대행사도 "헷갈려"
공장설립 인허가를 얻는 데 소요된 기간은 부지 매입을 빼고도 신청부터 공장 건축까지 최소 6개월 정도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든 인허가 과정이 별다른 문제 없이 진행됐다는 전제 아래서다.

경 대표는 “워낙 거쳐야 하는 단계가 많기 때문에 어디서 문제가 터질지 예측할 수 없다”며 “지방이 상대적으로 쉽다고는 하지만 인허가 절차 자체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전경련 조사에 따르면 공장설립 제안서 접수부터 건축허가까지 2년이 걸린 기업도 부지기수다.

대행회사에 공장 인허가를 요청했더니 현황 측량과 설계도면 작성이 곧바로 시작됐다. 공장배치도와 공사계획평면도, 생산기계시설 명세서 및 용량, 주연료 1일 사용량, 주생산품 1일 생산량, 생산공정도 등을 작성하는 단계도 빨라야 1주일이 걸린다.

이어 법인인감증명서와 법인등기부등본, 사업자등록증 등의 서류와 함께 관할 지자체에 공장 신설을 신청했다. 인허가 신청과 함께 지자체에서 산지전용협의, 개발행위협의 등을 함께 진행하기 때문에 개별팀을 위한 사업계획서와 현황실측도 및 구적도, 토지이용계획도 등을 따로 냈다. 이 단계에선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경우 한 달 정도면 절차가 끝난다. 하지만 어디서 절차가 틀어질지 알 수 없다.

◆그마저 수도권엔 공장용지가 없다

다음은 환경성 검토.계획관리지역은 개발면적이 1만㎡를 초과하면 반드시 지방환경청에서 사전환경성 검토를 받아야 한다. 보통 한 달이 필요하다. 개발면적이 1만㎡ 이하면 도시계획심의가 기다리고 있다. 이어 공유수면점용, 도로점용, 하천점용 허가도 필요했다. 경찰서에서 공안협의를 받아야 할 때도 있다.

최근 기업들은 지자체의 인허가 과정보다 국도유지관리사무소나 도로공사, 지방환경청, 경찰서 등과의 환경성 검토나 도로점용 협의 등에서 일 처리가 지연되는 사례가 많다고 꼬집고 있다. 환경성 검토만 해도 대부분 협의서대로 처리되는 경우에도 별다른 사유 없이 처리 기한인 30일을 채우는 게 일쑤라는 지적이다.

이 단계를 넘으면 건축허가가 기다리고 있다. 공장을 짓는 허가를 받기 위한 것으로 건축설계도서 등의 서류가 요구됐다. 지적공사를 통해 토지를 나누는 지정분할과 경계측량을 했다. 건축허가를 받아 공장을 지으면서도 중간검사를 받아야 했다. 훼손한 자연을 복구하기 위한 설계도가 있어야 하고 이 모든 과정을 거친 뒤 산지복구 준공, 건축허가 준공을 거쳐 공장완료 보고를 마쳤다. 공장설립엔 줄잡아 40~50개 법 규정이 적용됐다.

경 대표는 “절차가 복잡하더라도 공장을 지으려는 수요는 꾸준하지만 문제는 공장용지가 없다는 점”이라며 “최근 1년 동안 공장설립을 대행한 실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오염총량제 규정에 따라 오염총량 할당이 필요한데 이게 바닥났다”며 “경기 광주와 남양주 이천 여주 양평 등에선 공장 설립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임상혁 전경련 산업본부장은 “중국 선전시 등은 1000달러 이상 투자나 첨단업종에 대해선 공장설립 인허가를 6일 안에 내주겠다며 기업유치에 열을 올리는 것과 비교하면 너무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김수언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