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한은ㆍ정부 '밥그릇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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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용석 경제부 기자 hohoboy@hankyung.com
“결국 부처 간 밥그릇 싸움으로 변질돼 버렸네요.”
금융계 고위 관계자는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떨떠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금융채에 지급준비금을 부과하는 문제를 얘기하면서다.
최근 기획재정부는 한국은행, 금융위원회와 함께 지준 부과 대상 금융채의 범위를 논의 중이다. 다음달 17일부터 ‘금융안정’ 기능을 강화한 개정 한은법이 시행되는 데 따른 조치다. 하지만 부처 간 이해관계가 전면에 부각되면서 원칙보다 ‘모양새 갖추기’로 흐르고 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이유는 이렇다. 재정부는 지난 2일 지준 부과 대상을 만기 2년 미만 은행채로 제한하는 한은법 시행령을 입법예고했다. 당초 관심을 모았던 특수은행채는 제외됐다. 특수은행채는 산업은행 중소기업은행 수출입은행 같은 정부 소유 은행이 발행한 채권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정책 목적을 위해 설립된 특수은행을 일반 은행과 동등하게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곧바로 한은이 반발했다.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금융채 발행잔액은 약 178조원이다. 이 중 특수은행채가 56%(100조원)에 달한다. 만기 2년 이상 은행채도 33%(58조원)나 된다. 재정부 안대로라면 지준 정책이 무력화된다는 논리였다.
그러자 금융위가 발끈했다. 특수은행채는 금융위가 사전에 발행을 통제할 수 있는 만큼 일종의 이중규제라는 것이다. 금융위는 “한은이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것 아니냐”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부처 간 이해관계가 엇갈리자 재정부는 새로운 대안을 마련했다. 특수은행채를 지준 부과 대상에 포함시키는 대신, 특수은행채에 지준을 부과할 때 재정부와 사전 협의를 거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은은 명분을, 재정부와 금융위는 실리를 각각 챙기게 된다. 일종의 꼼수다.
은행들은 불만이다. 예금과 달리 만기가 정해져 갑작스런 상환 위험이 적은 채권에 지준을 부과하는 것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부처 간 이해관계로 뒤늦게 특수은행채가 포함된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도대체 원칙이 뭔지 모르겠다.” “사공이 많다보니 배가 산으로 간 꼴”이라는 말이 은행권에서 흘러 나오고 있다.
주용석 경제부 기자 hohoboy@hankyung.com
금융계 고위 관계자는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떨떠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금융채에 지급준비금을 부과하는 문제를 얘기하면서다.
최근 기획재정부는 한국은행, 금융위원회와 함께 지준 부과 대상 금융채의 범위를 논의 중이다. 다음달 17일부터 ‘금융안정’ 기능을 강화한 개정 한은법이 시행되는 데 따른 조치다. 하지만 부처 간 이해관계가 전면에 부각되면서 원칙보다 ‘모양새 갖추기’로 흐르고 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이유는 이렇다. 재정부는 지난 2일 지준 부과 대상을 만기 2년 미만 은행채로 제한하는 한은법 시행령을 입법예고했다. 당초 관심을 모았던 특수은행채는 제외됐다. 특수은행채는 산업은행 중소기업은행 수출입은행 같은 정부 소유 은행이 발행한 채권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정책 목적을 위해 설립된 특수은행을 일반 은행과 동등하게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곧바로 한은이 반발했다.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금융채 발행잔액은 약 178조원이다. 이 중 특수은행채가 56%(100조원)에 달한다. 만기 2년 이상 은행채도 33%(58조원)나 된다. 재정부 안대로라면 지준 정책이 무력화된다는 논리였다.
그러자 금융위가 발끈했다. 특수은행채는 금융위가 사전에 발행을 통제할 수 있는 만큼 일종의 이중규제라는 것이다. 금융위는 “한은이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것 아니냐”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부처 간 이해관계가 엇갈리자 재정부는 새로운 대안을 마련했다. 특수은행채를 지준 부과 대상에 포함시키는 대신, 특수은행채에 지준을 부과할 때 재정부와 사전 협의를 거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은은 명분을, 재정부와 금융위는 실리를 각각 챙기게 된다. 일종의 꼼수다.
은행들은 불만이다. 예금과 달리 만기가 정해져 갑작스런 상환 위험이 적은 채권에 지준을 부과하는 것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부처 간 이해관계로 뒤늦게 특수은행채가 포함된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도대체 원칙이 뭔지 모르겠다.” “사공이 많다보니 배가 산으로 간 꼴”이라는 말이 은행권에서 흘러 나오고 있다.
주용석 경제부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