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사들이 전체 가맹점에 대한 수수료 인하 작업에 들어갔다. 중소 가맹점에 이어 대형 가맹점까지 수수료를 내려 달라고 강하게 요구하고 나서자 ‘백기’를 든 것이다. 카드사들은 소비자 혜택을 축소하는 방식으로 수입 감소를 보전한다는 방침이어서 소비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현대차 고강도 압박

대형가맹점 카드수수료도 내린다
신한·삼성·현대·롯데·비씨 등 5개 전업 카드사는 내달 1일부터 현대·기아자동차 가맹점에 대한 카드 수수료율을 낮춘다고 29일 밝혔다. 신용카드는 종전 1.75%에서 1.7%로, 체크카드는 1.5%에서 1.0%로 각각 낮아진다.

현대·기아차는 앞서 이들 카드사에 가맹점 수수료를 내리지 않을 경우 가맹 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전달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자동차는 카드결제금액을 감안할 때 원가에 비해 과도하게 높은 수수료를 내고 있다”며 “특히 체크카드는 카드사의 금융비용이나 대손위험이 없는 점을 고려하면 대폭적인 수수료 인하요인이 있다”고 말했다.

현대·기아차의 압박에 버티고 있는 곳은 KB국민카드가 유일하다. KB국민카드는 일단 현대·기아차의 요구에 대해 좀 더 협의해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대·기아차는 KB국민카드가 요구를 수용하지 않자 지난 4일부터 KB국민카드를 이용한 자동차 구입을 거절하고 있다.

카드업계는 KB국민카드도 결국은 수수료를 인하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매출 감소에 따른 시장 지위 하락이 불가피해서라는 진단이다. KB국민카드 관계자도 “소비자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수수료 협상을 빨리 마무리짓겠다”고 말했다.

○“전체 수수료 인하 불가피”

각 카드사에는 수수료를 내려 달라는 가맹점의 요구서가 쌓여 있는 상태다. 가맹 계약 취소를 거론한 것은 현대·기아차가 처음이지만 이를 참고해 ‘실력행사’에 나서는 곳이 줄이을 것으로 카드업계는 보고 있다.

당장 다른 완성차 업체와 수입차 업체가 수수료 인하를 요구해올 것이 뻔하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현대·기아차와 형평성 문제 때문에 다른 업체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며 “다른 업종에서도 가맹점들의 공세가 심해 (수수료를) 더 내려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 카드사 사장은 “전체적으로 가맹점 수수료를 낮출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카드사 사장도 “조만간 업계 회의를 열어 수수료를 어느 정도 낮추는 게 적당한지 등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카드업계는 금융당국이 다음달 발표할 ‘신용카드 시장 구조개선 대책’에 수수료 인하 방침을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직능단체 30일 대규모 집회

각종 단체들이 시위와 집회를 계속하고 있는 것도 카드사들이 수수료 인하 쪽으로 방향을 트는 데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유흥음식업중앙회 등 62개 직능단체로 이뤄진 ‘유권자시민행동’은 ‘직능경제인단체총연합회’와 공동으로 30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업종 차별 없이 신용카드 수수료율을 1.5%로 인하할 것을 요구하는 결의대회를 개최한다. 대회에는 1만여명의 회원들이 참석할 것으로 주최 측은 추산하고 있다.

이와 함께 △마사지업 △귀금속판매업 △단란주점업 △노래연습장 △안경사협회 등 소속 업소 30여만개가 이날 하루 동맹휴업에 들어간다.

카드사 관계자들은 가맹점 수수료 인하에 대해 회원 부가 서비스 축소 등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지만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않고 있다. 소비자에 이어 금융당국마저 “소비자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뜻을 밝히고 있어서다.

김일규/박종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