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R&D투자 '스웨덴 패러독스' 경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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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과학만 쏠리면 상용화 뒤져…민간지원 줄일 땐 투자의욕 저하
연구비 유용은 감독으로 풀어야
이동근 <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
연구비 유용은 감독으로 풀어야
이동근 <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
물론 기초과학분야 투자를 늘리는 일은 중요하다. 다만 최근 세계 각국은 기초연구 중시 전략을 탈피해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융복합부문과 상용화부문에의 연구비중을 높이고 있음에 유념해야 한다. 기초과학부문의 연구성과는 논문으로 발표돼 전 세계적으로 공유되므로 응용성을 중심으로 연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산업원천기술 개발에 집중하는 전략은 독일과 일본을 오늘의 기술강국으로 만들었는데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기초과학 발전이 중요하다고 해서 이에 대한 투자를 신성시하는 것도 위험하다. 2007년 스웨덴의 R&D 투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3.63%로, 당시 유럽 평균보다 두 배나 많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이처럼 R&D투자를 많이 했지만 산업발전에 미친 영향은 허무했다. 매출액을 기준으로 1999년 세계 73위였던 볼보는 2009년 177위로 떨어졌고, 87위였던 에릭슨은 285위로, 141위였던 일렉트로룩스는 590위로 떨어졌다. 스웨덴 정부가 기초과학 연구에 치중한 나머지 시대가 필요로 하는 부문에 제대로 R&D투자를 하지 못한 탓이다. 이를 일컬어 스웨덴 패러독스라고 한다.
기초연구만 응용연구의 원천이 되는 것이 아니며 응용연구도 기초연구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비행기 발명이 현장의 시행착오 과정을 거쳐 탄생된 후 항공유체역학, 항공열역학 등 기초학문 발전의 토대가 된 것이 좋은 사례다.
2000년대 기술혁신이 경제성장에 미친 기여도는 45%에 이른다. 그렇지만 녹색산업 등 새로운 분야에서 민간기업이 R&D투자에 나서기란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다. 거액의 투자자금이 필요한 데다 실패하면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예산지원은 국가 전체의 R&D 투자를 견인하는 효과가 있다. 정부가 민간기업의 R&D를 지원하면 민간은 그 이상의 투자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전체 R&D 중 정부부문 비중은 프랑스 41.2%, 영국 36.8%, 미국 32.7%인 데 반해 우리나라는 28%에 불과하다. 정부가 예산지원을 축소하게 되면 현재 진행 중인 녹색신재생에너지분야나 첨단융합분야의 기술개발이 차질을 빚게 될 것이며 이는 우리 경제의 신성장동력 확보를 더욱 힘들게 만들 것이다.
정부는 중소기업을 세계적인 히든챔피언으로 육성하기 위한 R&D 지원을 약속해 놓고 있다. 또 올해에는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중견기업을 위해 지원제도를 도입하고 글로벌 전문기업 육성을 위한 R&D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국회의 R&D 지원예산 삭감은 이 같은 정책목표의 달성을 어렵게 하고 정책불신을 야기할 수 있다.
연구비 유용 등의 도덕적 해이 현상은 우리 사회가 극복해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그러나 0.53%의 연구비 유용 사례를 들어 성실히 연구활동 중인 99.5%에게마저 불이익을 주는 것은 옳지 않다. 사업비 사용에 대한 감시감독을 강화하고, 관련자를 일벌백계해 해결하는 것이 정도이다.
흔히 최고의 복지는 일할 기회를 마련해 주는 것이라고 한다. 경제의 지속성장을 담보하고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려면 신산업이 많이 나와야 하며, 그러려면 관련분야 연구·개발투자가 활성화돼야 한다. 아무쪼록 국회에서 미래를 내다보고 R&D 예산안을 심의해 주기 바란다.
이동근 <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