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여명이 앉을 수 있는 좌석은 행사 시작 30분 전부터 꽉 들어찼다.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한 경찰 400여명은 2시간30분 동안 계단에 쭈그리고 앉거나 토론회장 뒤편에 끝까지 서 있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들은 경찰에 우호적인 발언이 나오면 환호했고, 검찰의 입장을 대변하는 발언이 나오면 야유를 퍼부었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냐. 경찰의 내사에는 문제가 있고 검찰의 내사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냐.” 이세민 경찰청 수사구조개혁단장의 이 말은 경찰의 기존 입장을 반복한 것이었지만, 표현 방식은 다분히 선동적이었다. 토론회라는 형식은 갖췄지만 사실상 정부안인 총리실의 조정안에 항의하는 ‘집회’이자, 10만 경찰의 세(勢)를 과시한 ‘단합대회’였다.
일선 형사들은 목숨을 담보로 일한다. 밥 먹듯 잠복근무를 하고 차 안에서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기도 한다. 국민에게 고품질 치안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발로 뛰지만, 경찰에 대한 해묵은 불신 때문에 존중받지도 못한다. 묵묵히 업무를 수행해 온 이들이 총리실의 조정안에 느꼈을 굴욕감이 나름대로 이해되는 이유다.
하지만 ‘떼법’ 관행을 엄단하겠다고 공언한 건 경찰이었다. 19대 총선이 반년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국회에서 보인 경찰의 행동은 표(票)를 무기로 입법부를 압박하고 세를 과시해 행정부를 억누르는 다른 이익집단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반대파의 논리를 이성적으로 경청하지 않고 감정적인 대응으로 일관한다면 아무리 옳은 주장이더라도 ‘떼쓰기’로 폄하될 수 있다. 수사지휘권 조정처럼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일수록 ‘주장’의 방식은 더 세련되고 논리적이어야 한다.
일선 경찰들이 휴일을 반납한 채 여의도에 집결하고, 수갑을 반납하며 격정을 토해낼 동안 경찰 수뇌부는 무엇을 했는지도 궁금하다. 경찰 입장에서는 굴욕적일 수도 있는 총리실의 조정안이 입법예고되면서 일선 경찰들이 수사에 전념하지 못하고 있지만, 이에 구체적으로 책임지고 직을 거는 수뇌부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김선주 지식사회부 기자 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