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한산 모시
실크 의류 및 인테리어 제품으로 유명한 ‘짐 톰슨’은 태국 브랜드다. 2차대전 당시 유럽과 아시아에서 정보요원으로 활약했던 미국인 짐 톰슨(1909~1967)이 전후 태국에 정착, 값싼 수입직물 때문에 고사 직전이던 태국의 전통 수제 실크를 되살려 글로벌 브랜드화한 것이다.

섬유사업가의 아들이던 톰슨이 태국 실크의 세계화 가능성을 타진한 방법은 남달랐다. 원단을 팔기 위해 뛰어다니기보다 패션잡지 보그를 찾아 유명 디자이너가 만든 태국 실크 의상을 소개해주도록 섭외한 것이다. 생산도 마찬가지. 공장을 차리지 않고 그동안 수작업을 해온 현지인들에게 재료와 염료를 준 뒤 전처럼 각자 자기 집에서 작업하도록 했다.

전통적인 수제품으로 포지셔닝한 셈. 그리곤 민화와 코끼리 꽃 등 태국적인 것에 현대 감각을 더한 세련된 디자인으로 세계 시장에 진출했다. 톰슨은 휴가지에서 실종됐으나 그의 집은 기념관으로 변 해 방콕의 필수 관광코스가 됐고, 짐 톰슨은 세계 30여개국에 독립 매장을 둔 태국의 실크 전문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우리의 전통직물인 ‘한산 모시’ 직조법(짜기)이 유네스코 인류 무형유산에 올랐다. 베틀은 개량됐지만 모시를 째고 삼고 짜는 직조과정은 1500년 전 그대로 유지돼온 게 인정됐다고 한다. 모시는 삼국시대부터 있었고, 조선조 땐 한양 육주비전에 저포전이 포함됐을 만큼 널리 쓰였다.

물들이기 쉬운데다 색도 바래지 않는다. 땀 흡수 및 발산이 잘되고 물에 강해 빨아 입을수록 윤기를 더한다. 천 자체가 흐물거리지 않아 어떤 옷을 만들어도 단아하지만 속이 살짝 비치는 만큼 때로는 섹시하기 이를 데 없다. 사발 하나에 한 필이 다 들어간다고 할 만큼 가늘고 고운데다 가벼워 잠자리 날개같다고 하는 한산 세모시는 특히 더하다.

화학섬유에 밀렸던 한산 모시의 아름다움이 재조명되면서 이를 세계화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충남 서천군과 건양대 한산모시 사업단 등이 쾌적함은 살리되 구김·세탁 등 손질 문제를 개선한 실용적 원사 방적 기술을 개발하고 ‘베가테어’등 브랜드를 만든 게 그것이다.

세계가 인정한 전통의 멋과 기술에 디자인을 더하면 해외에서도 매력적인 상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제 경쟁력을 갖추려면 가격이 적정하거나 최고급 수제품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모시의 강도는 리넨(아마)의 4배, 무명의 8배다. 의류만 고집하지 말고 오스트리아 리넨처럼 인테리어 소재로 띄워보는 것도 생각할 일이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