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ELW 무죄선고' 의 생채기
“장중이면 어때요. 할 일도 없습니다.”

주식워런트증권(ELW)시장의 유동성 공급자(LP)는 증권업계에서도 가장 바쁜 직종 중 하나다. 5분에 한 번 이상, 수많은 종목의 호가를 내느라 점심은 샌드위치로 때우거나 거르기 일쑤다. 그러던 한 LP가 얼마 전 느긋하게 점심이나 함께하자고 했다. 회사가 ELW 발행을 잠정적으로 중단하면서 호가를 제시할 종목이 급감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그가 ELW LP를 맡은 지는 4년째. 요즘처럼 업계가 위기감에 휩싸인 적은 없다고 했다. 세계 1위를 넘보던 ELW시장은 검찰 수사가 시작되며 이른바 ‘악마의 유혹’ 근원지로 몰렸다. 증권회사 전·현 대표 12명이 기소당하는 초유의 사태 속에 대우증권과 IBK투자증권 등이 ELW 발행을 중단했다. 한 대형 증권사는 임직원의 ELW 투자를 금지시켰다.

ELW 도입부터 투자자 교육을 이끌어왔던 1세대 마케터 일부는 주가연계증권(ELS)이나 해외선물 등으로 전문분야를 옮기거나 홍콩 등 해외시장으로 돌아갔다. 한 외국 증권사는 1년 이상 준비해온 국내 ELW 진출을 포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인력과 시설 투자를 완료했지만 ‘규제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판단에서다. 1년새 세 번째 건전화대책이 논의될 정도로 한 치 앞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외국계 증권사 전문가는 “ELW는 ELS 등 다른 파생상품의 리스크 헤지(위험회피)를 보완하기 때문에 업계 역량과 직결된다”며 “해외에 내놓을 만한 소매파생상품시장을 만들었다는 자부심도 한때 있었지만 사라졌다”고 말했다. ELW업계에 종사하는 300여명은 국내 파생상품시장이 터를 잡는 데 노하우를 보태온 주인공이다. 이들은 ELW시장이 사법 처리대상에 오르면서 하나둘 짐을 싸고 있다.

물론 증권사가 잘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매출을 늘릴 수 있다는 유혹에 스캘퍼(초단타매매자)와 공생한 점 등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법원이 지난 28일 대신증권 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ELW시장의 문제점을 정책적으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권고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 같은 결론에 이르기까지 상처가 너무 컸다. 시장은 어그러졌고 증권사 등 참여자들은 움츠러들었다. ELW를 앞장서 도입했으면서도 당국의 눈치만 보고 있는 한국거래소와 금융당국만 빼고 말이다.

김유미 증권부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