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도 한국만큼이나 영어교육에 관심이 많다. 인구가 많은 만큼 영어학원 규모도 크다. 그중 가장 큰 학원은 베이징에 있는 신둥팡(新東方)교육그룹이다. 신둥팡교육그룹의 유료 등록 수강생은 210만여명이고, 소속 강사는 1만7000명에 이른다. 단일 학원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별도 운영하는 1200여개의 온라인 강좌를 듣는 수강생은 약 670만명이다. 지금까지 신둥팡을 거쳐간 수강생은 1200만여명으로 추산된다. 2006년 9월에는 중국 민간 교육업체로는 최초로 미국 나스닥에 상장됐다.

신둥팡은 중국 영어교육의 열기를 타고 급성장 중이다. 2008년(결산일 5월31일) 각각 2억달러와 4850만달러였던 매출과 순이익은 3년 만에 5억5790만달러, 1억180만달러로 늘어났다. 2006년부터는 변호사, 공인회계사, 정보기술(IT) 전문자격증 교육분야에 진출했고 2008년에는 기숙학원을 세우는 등 중국 명문대 대학입시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부침이 심한 중국 사설학원업계에서 신둥팡이 성장을 거듭하는 것은 3수생 출신의 열등생이었던 위민훙(兪敏洪·49) 최고경영자(CEO)의 독특한 리더십 덕분이라는 평가다.

◆“영원한 열등생은 없다”…블루오션 개척

위 CEO는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3수 끝에 베이징대 영문과에 합격했다. 그의 인생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지방 토박이인 탓에 표준어인 베이징어를 제대로 익히지 못했고 영어 구사 능력도 떨어져 학창시절 내내 꼴찌였다. 3학년 시절 열반으로 떨어지는 수모를 겪기도 하면서 스트레스 탓에 폐결핵으로 1년간 휴학하기도 했다. 위 CEO는 “말이 잘 안 통하니 학창시절 연애도 한 번 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도피처로 미국 유학을 준비했지만, 3년간의 유학준비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의 대학 동기 50명 중 49명은 유학을 떠났다. 절망하던 그는 1985년 졸업 뒤 학교에서 토플(TOEFL)과 GRE 강사를 하기로 진로를 수정했다. 그러나 곧 학교 밖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적발돼 행정처분을 받고 해임됐다.

1993년 그는 영어교육이 사업성이 있다는 점을 간파하고 신둥팡교육그룹의 전신인 신둥팡 영어학원을 세웠다. 중국과 외국 간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유학생 수는 급격히 늘어나는데 유학에 필요한 어학교육과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대로 된 업체가 없다는 점을 노린 것이었다. 위 CEO는 “사무실 크기가 10㎡에 불과했다”며 “학생 몇 명만 있어도 밥벌이는 되겠다는 심정으로 시작한 것”이라고 회고했다.

위 CEO는 자신의 유학준비 경험을 살려 구체적이면서도 차별화된 유학 컨설팅을 제공했다. 동시에 미국 유학에 필수항목인 GRE와 토플에 집중했다. 유학 전문 학원이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수강생들이 몰려들었다. 그는 “1년이 지나자 수강생을 감당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접착제 리더십’

혼자 힘으로 학원을 꾸려나가기가 벅차자 그는 최고의 인재를 구하겠다는 마음으로 재미 중국 유학생을 영입하기 위해 무작정 미국으로 갔다. 프린스턴 대 교수로 재직 중이던 베이징대 동기 왕창(王强)을 비롯해 미국 벨 연구소에 있던 현재 신둥팡그룹 최고 재무책임자(CFO) 쉬샤오핑(徐小平), 바오판이(包凡一)도 데리고 왔다. 신둥팡의 사장이자 2인자인 왕창은 “프린스턴대 교정에서 위 CEO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많은 중국 유학생들이 위 CEO에게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깍듯이 인사를 하는 데 놀랐다”며 “거기서 신둥팡의 비전을 확신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위 CEO는 최고의 인재만을 고집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해외 명문대학에서 어학 관련 학위를 받고 귀국한 유학파들로만 강사진을 구성한다. 능력을 최대한 이끌어 낼 수 있는 급여체계도 도입했다. 신둥팡에서는 수강생 강의 평가에 따라 높은 점수를 받은 강사는 더 많은 연봉과 성과급을 받고, 반대로 만족도가 낮은 강사는 퇴출되거나 재교육을 받아야 한다. 신둥팡에서 스톡옵션을 받은 스타급 강사는 50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스타 강사가 되면 고정 급여의 수십 배가 되는 성과급까지 받을 수 있다. 입사 당시부터 10 대 1이 넘는 경쟁을 뚫어야 하며, 스타 강사가 되려면 더 혹독한 경쟁을 거쳐야 한다.

위 CEO는 능력을 최대한 끌어내는 것에 주력하지만, 직원들에게는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아이디어를 모아 경영에 반영한다. 그의 주된 역할은 다양한 의견을 조율하는 것이다. 이런 그의 리더십은 사내에서 ‘접착제 리더십’으로 알려져 있다. 각자 개성과 자기 주장이 강한 인재들이 모여 있어 회의를 할 때마다 좀처럼 결론이 나지 않을 때, 유머감각으로 팽팽하고 서먹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고 서로의 의견에서 합의점을 찾아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왕창은 “그는 마치 접착제처럼 우리들의 생각을 서로 붙여놓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재미있는 강의,인성교육…‘신둥팡 정신’

위 CEO는 재미있는 강의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소란스러운 편인 중국 사람들의 정서에 맞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강의실은 유머와 미래에 대한 영감이 넘치는 곳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신둥팡 강사들은 강의 중 농담과 유머가 넘친다는 평가를 받는다. 위 CEO는 강사들에게 영화배우처럼 행동하도록 훈련시킨다. 일부에서는 국내외 사설 학원과 비교해서 너무 요란스럽다는 비판도 나오지만, 수강생들의 강의 만족도는 90% 이상으로 높게 나온다. 위 CEO는 학원이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는 것뿐 아니라 인생을 배울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교육에서는 기(氣)가 중요하다”며 “좋은 기운을 학생들이 받으면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 2002년부터 양저우(揚州)에 정원 4000명 규모의 12년 과정 사립 초·중등학교를 운영 중이다. 그의 교육관은 ‘신둥팡 정신’으로 요약된다. 학생들이 영어만 잘한다고 사회에서 성공하는 것이 아니고 올바른 인생관, 절망에서 희망을 보는 긍정적 태도가 있어야 성공한다는 것이다. 신둥팡에 들어서면 벽에 빼곡히 걸린 액자에는 세계 명언이나 책에서 뽑은 좋은 문구들이 쓰여 있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학생들이 언제 어디서나 좋은 글을 읽으면서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으로 이런 문구를 붙여놓았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고교생이나 대학생을 상대로 인생의 목표를 세우고 성공을 이루는 법 등을 강연하는 것을 즐긴다. 그는 또 학생들에게 회장이라는 직함보다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것을 좋아한다.

임기훈 기자 shagger@hankyung.com